한·일 전문가 "트럼프 함께 넘어야…가짜뉴스도 공동대응 절실"

2025-05-03

“한·일 관계가 다시 후퇴해선 안 된다.”

한국의 조기 대선을 앞두고 한·일 전문가 사이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목소리다. 지난달 28일 일본 홋카이도대에서 ‘트럼프 시대 세계정세 변환과 한·미·일 협력’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홋카이도대 공공정책대학원 공동 주최)에 모인 전문가들도 이 점을 가장 우려했다.

특히 양국이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은 가운데, 한국(6월 대선)과 일본(7월 참의원 선거) 모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 여론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심포지엄에선 “정권의 이념성보다 주변국을 바라보는 전략적 우선순위, 역사 문제에 대한 시각이 더 중요하다” “부정적인 인식을 막기 위해 가짜뉴스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면 한·일이 협력해 메워야 한다”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다음은 주요 발언.

“주한미군 대만 차출은 인도태평양군 의미”

▶김용민 건국대 교수=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최근 한국을 패싱하고 일본을 찾아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차출론을 언급했다. 사실상 주한미군이 인도·태평양군이 된다는 의미인데, 한국에선 크게 주목을 안 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 안보 관련 상황도 자주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한·일이 함께 대응할 필요가 있다.

▶나카토 사치오 리쓰메이칸대 교수=과거 북한이 여러 차례 핵실험을 했을 때를 돌아보면 핵 위협이 있다고 해서 한·일이 협력하진 않았다. 특히 한국은 보수·진보 정권과 상관없이 전략적 우선순위, 즉 주변국에 대한 협력의 우선순위와 역사 문제에 대한 시각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전략적으로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역사 문제가 정치화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이기태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미·중 경쟁이 고조되는 만큼 한·미·일과 한·일·중 같은 소다자 협력이 지역 내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문제는 중국이 한·미 관계 흔들기를 계속 시도하면서 역사 문제를 이용해 일본에 대항하는 형태의 한·중 연대를 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국 간 부정적인 인식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과 협력이 중요하다.

“저출산·고령화에 양국 모두 정책 실패”

▶나오미 현주 치 홋카이도대 교수=안보 문제 못지않게 한·일이 함께 겪는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양국 모두 저출산 고령화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나라도 좋은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협력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이토 고타로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트럼프 행정부에 대응해 한·일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 중에 방위산업이 있다. 만약 일본에서 한국의 장비를 구매하게 된다면 적어도 3년 이상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구성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이 해상보안을 강화해서 얻는 이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무역 물동량이 일본에서 가까운 동중국해를 지나가고 있다.

▶김범수 서울대 교수=김대중 정부 시기에 한·일 관계가 좋았다. 언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어업협정도 체결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초기엔 일본에 우호적인 자세를 보였다. 동해나 일본해가 아닌 ‘평화의 바다’로 부르자는 제안도 했다. 한국에 진보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일본에서 너무 걱정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교생 100명씩 유학보냈는데, 왜 없앴나”

▶정기웅 한국외대 교수=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를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후 10년 동안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장학금을 지원해 매년 한국의 고등학생 100명을 선발해 일본의 명문 이공계 국립대에 유학을 보냈었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왜 없어졌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깊은 이해 속에 반목도 줄게 마련이다. 서로를 잘 아는 미래 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좋은 프로그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홍정민 한국뉴욕주립대 교수=한·일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맹국이란 점을 트럼프 정부에 계속 각인시켜야 한다. 특히 양국의 조선업은 미국의 해군력 강화 및 유지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양국이 협력해서 대미 레버리지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도 1기 때처럼 처음엔 세게 나가다가 나중엔 약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한·일이 전략적으로 잘 인내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버틸 필요가 있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한·미·일 협력의 상징인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의 주역들이 사라지고 3국 정상이 모두 교체되면서 관계의 안정성 측면에서 약간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USAID(미 국제개발처)를 해체하면서 인태 지역에서도 개발 및 인도적 지원을 안 하게 됐는데, 미국을 대신해 한·일이 협력해서 지원하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현 체제론 한계…‘포스트 65년 체제’ 필요”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 교수=최근까지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기반한) ‘65년 체제’라는 틀 속에서 한·일 관계가 크게 요동쳤다. 가령 2018년 대법원의 징용공(강제동원)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65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65년 체제를 부정하진 않으면서도 인권을 고려해 아무것도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65년 체제를 유지하려는 자세로 일본과 관계를 회복했다. 65년 체제는 한계가 많은 만큼 민주주의적 가치에 기반한 ‘포스트 65년 체제’를 모색할 때가 됐다고 본다.

▶최석진 홋카이도대 교수=한·일 간 갈등 국면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재생산되는 상호 부정적인 인식들이 여론에 영향을 많이 준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인식이 공고화되거나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 간 외교와 민간 외교를 병행하는) 투 트랙 외교를 통해 이런 인식의 격차를 좁힐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 여름께 미국은 대중국 정책을 관리 모드로 전환했다. 그간의 ‘중국 때리기’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후 그해 11월에 바이든과 시진핑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때만 해도 미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여전히 미·중 간 GDP(국내총생산) 격차는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지금 트럼프의 미·중 관세 대결에 중국이 생각보다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돼야 하는 시점이다.

“미·중 힘겨루기 상황서 협력 방안 찾아야”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미국과 무역전쟁을 하는 중국은 현재 내수·투자·수출 등 세 가지 지표가 다 안 좋은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한화로 2000조원 정도를 풀었다. 그런 영향으로 1분기 경제성장률 5.4%가 나온 거다. 하지만 미국 수출길이 끊긴 컨테이너가 항만에 쌓이고 있다. 미·중 모두 숨 참기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한·일도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

▶연현식 주삿포로 총영사=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두 개의 전쟁’ 종결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등을 재료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예측한다. 트럼프의 이런 성향은 한국과 일본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북 관계의 진전 여부에 대해 한·일 양국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며 협력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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