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일본 기성전 도전 7번기에서 이치리키 료 9단이 이야마 유타 9단을 4대3으로 눌렀다. 1월 16~17일 첫판을 두었고 이후 전국을 돌며 매주 수·목 이틀간 대국을 이어가 3월 12~13일 7국을 끝냈다. 이치리키는 우승 상금 4300만엔(4억2000만원)을 받는다.
“약하다”는 딱지가 붙은 일본 바둑이지만 이번 기성전 시리즈는 꽤 많은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치리키가 지난해 응씨배에서 우승하며(일본의 세계대회 우승은 19년 만이다) 부흥의 희망을 보였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제한시간 8시간에 ‘이틀걸이’ 바둑이라는 대국 방식도 새삼 관심을 끌었다. 10초 바둑이 바둑TV를 점령한 우리의 숨 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아득한 옛날 영화를 보는 느낌에 젖어 들게 해줬기 때문이다. 7번기는 또 얼마나 긴가. 지금은 일본의 기성전과 명인전에만 남아있는 이틀걸이 바둑과 7번기는 그야말로 바둑시합의 골동품이 아닐 수 없다.
패배한 이야마는 일본 내에선 전설적인 바둑기사다. 그는 77번 우승하여 일본 바둑 사상 최다우승 기록을 세웠고, 7대 기전을 두 번이나 동시 제패했으며, 본인방전 11연패 등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일본에선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하나 그의 시대는 일본 바둑의 대침체기와 맞물려있다. 그는 일본 바둑의 자존심이었기에 한국과 중국의 강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세계 무대에 함부로 몸을 던질 수 없었다. 출전 자체를 기피하는 듯 보였다. 어쩌다 출전하면 커다란 부담감 탓인지 맥없이 탈락했다. 훗날 자신에게 지면서 성장한 9년 후배 이치리키가 응씨배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대회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며 세계대회에 소극적이었던 자신의 태도를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올해 이야마는 36세가 됐다. 바둑 동네에서 36세는 많은 나이다. 무적의 이창호 9단도 30세 이후엔 우승하지 못했고 준우승만 10회 했다. 이야마는 이치리키에게 쫓기는 신세였지만 다시 한번 기성전 도전권을 움켜쥐었다. 마지막이라는 비장감이 느껴졌다. 출발은 좋았다. 4국까지 3승1패. 나머지 3판 중 한 판만 이기면 랭킹 1위 기성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나 그는 기운이 다한 듯 3연패하며 타이틀을 놓치고 말았다.
일본이 세계를 호령했던 시절의 7번기 한판이 떠오른다. 1980년대 초반, 최강자는 조치훈 9단인데 기성 타이틀은 ‘괴물’ 후지사와 슈코 9단이 5년째 보유 중이었다. 슈코는 이렇게 호언했다. “나는 일 년에 네 판만 이긴다.” 알코올 중독인 그는 기성전 7번 시리즈가 시작되면 술을 딱 끊고 전력을 다해 네 판을 이겼다. 도박빚을 갚고 일 년 생활비를 벌었다. 1983년 드디어 최강 조치훈이 도전해왔다. 실력 1위 대 서열 1위의 대결에 열도가 들썩였다.
놀랍게도 56세의 슈코가 27세의 조치훈에게 3연승으로 앞서갔다. 승부가 기울었다 싶을 때 조치훈이 3연승으로 따라붙어 3대3이 됐고 막판 조치훈이 대역전승을 거두며 4대3으로 승리했다. 결정적인 승부에서는 왜 꼭 뒷물결이 앞물결을 이길까. 그게 자연의 섭리일까. 그렇더라도 슈코는 참 특이한 존재였다. 고목처럼 깡마른 팔뚝으로 힘차게 바둑돌을 놓던 괴물 슈코. 내 추억의 사진첩 속에선 주름이 깊게 파인 그의 얼굴이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다.
승부란 꽤 운명적이다. 뭔가 섭리의 느낌이랄까, 그런 게 존재한다. 슈코가 운명을 거의 비틀었다가 실패했듯 이야마도 그렇게 실패했다. 잘 앞서갔지만 끝내 지고 말았다. 바둑에서 나이든 기사는 구식무기, 젊은 기사는 신무기에 비유된다. 화살이 총을 이길 수 없다. 일본바둑을 10년 넘게 떠받친 이야마도 이렇게 떠나는구나 생각하자 감상이 밀려온다.
일본이 이틀걸이 바둑과 7번기를 계속 유지하는 건 잘하는 일이다. 놓치기엔 서운한 바둑의 또 다른 면을 지켜준다. 이야마의 7번기도 그렇다. 승자보다 3대4로 진 패자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