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SF,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는다

2025-07-21

여성이 읽고, 여성이 쓴다.

한국 SF 문학계 얘기다. 최근 5년간 한국 SF 문학을 읽는 독자, 흥행을 이끄는 작가 모두 여성의 비율이 늘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SF를 읽는 독자의 비율은 여성이 60%대로 꾸준히 과반을 넘어왔다. 2025년 상반기엔 68.2%까지 그 비율이 올랐다. 2010년 기준 SF 독자의 성비가 반반이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이는 한국 SF 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작가들이 여성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심완선 SF 평론가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출간된 해인 2019년은 한국 SF 문학의 분기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2022년 영국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저주토끼』도 2019년에 나왔다. 이듬해 출간된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역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인기에 힘입어 무대화되는 등 한국 SF 문학의 저변을 넓혔다.

SF 전문 출판사인 래빗홀 최지인 편집자는 “(대중화 뒤엔) 김보영·배명훈·듀나·정세랑·정소연 등의 작가가 대중 독자의 지지를 받으며 꾸준히 한국 SF의 기틀을 잡아온 배경과, 문단문학에서 벗어난 다양한 공모전의 등장·IP 개발을 위한 투자 경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한국 SF 문학 작가의 성비가 여성에 치우친 상황은 아니다. 성별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이들도 있으며, 신인을 기준으로 하면 성비는 반반에 가깝다. 2016년부터 신인 작가를 꾸준히 발굴하며 올해 10주년을 맞은 한국과학문학상의 현 주최처인 SF 전문 출판사 허블의 김학제 편집자는 “그동안 한국과학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는 모두 44명인데, 그중 여성 작가의 비율은 약 47%”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초엽, 천선란 작가를 위시한 작품들은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시켰고,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처럼 작동하며 SF 출판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전했다. 인기 여성 작가들의 등장이 장르의 대중화를 견인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발표된 예스24의 ‘2025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총 44만명 투표) 1위로는 SF, 호러, 스릴러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쓰는 조예은이 뽑혔다.

최근엔 한·중 여성 SF 작가 간 교류도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11일 SF 전문 출판사 래빗홀이 발간한 SF 앤솔러지 『다시, 몸으로』(사진)는 출간 1달 만에 판매 1만부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 앤솔러지는 한국의 김초엽·김청귤·천선란 작가와 중국의 저우원·청징보·왕칸위 작가가 함께했다. 저우원 작가는 미국의 SF 대가 조지 R. R. 마틴이 수여하는 테란상 등을 수상했고, 청징보 작가는 중국 여성작가 최초로 중국 양대 SF 문학상인 성운상과 은하상을 모두 받았다. 왕칸위 작가 역시 성운상 수상 경력이 있는 인기 작가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무엇이 다를까. 이 고민은 지난달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다시, 몸으로』 출간 기념 대담에서도 나왔다. 이 자리에서 김초엽 작가는 “이전 세대 SF에 여성 인물들이 부족한 것이 아쉬워 가급적 다수의 인물을 여성으로 구성한다”며 “SF 장르에선 현재 시공간에서 사회문화적으로 빚어지는 여성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의 여성을 다룰 수 있어 더욱 재밌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늘어난 여성 등장인물의 수만큼 다양한 성격과 서사를 만날 수 있다. 여성 인물 간의 관계가 마냥 친밀하지 않고, 여성이 무조건 정의로운 역할로 등장하지 않는 등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한 서사 또한 매력이다. 『다시, 몸으로』에서도 ‘달고 미지근한 슬픔’(김초엽)의 화자는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상대방 여성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난꽃의 역사’(청징보) 속 주인공인 노년 여성 천메이란은 동네에서 이름이 알려진 ‘이상한 여성’이다.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작품에 녹아드는 것 또한 특징이다. 2022년부터 한국과학문학상 심사를 한 인아영 평론가는 “지난 10년간의 작품은 젠더, 노동, 인공지능, 기후위기 등의 사회문제를 SF 장르적인 문법으로 탐색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며 “SF가 독립적인 문법을 가진 하위 장르라기보다는 문학계 전반에서 점점 더 대중화되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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