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속 도로 청소 ‘오겹살’ 겹쳐 입어…내 방 청소보다 흐뭇”

겨울이 더 추운 사람들

“예상대로입니다. 산더미네요.”

지난달 25일 새벽 6시. 추위는 어깨에 먼저 내려앉았다. 김준실(61)씨의 그 어깨에 묵직한 쓰레기 포대가 올라갔다. 으라차차! 10㎏짜리가 1t 트럭 위로 날아갔다. 월요일 쓰레기는 다른 날보다 두 배가량 많다. 그런데 이곳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독특하다. 야산을 끼고 자리 잡은 단독주택과 창고에서 연탄재와 건축 폐기물을 쏟아낸다. 골목도 좁아 집게차도 들어올 수 없다.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어둠이 가린 먼지, 낙엽 밑 숨은 살얼음, 언제라도 흉기로 돌변하는 폐기물에 자칫 트럭에서 떨어져 몸이 바닥을 칠 것 같은 불안함까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미리 장전해 놓은 총알이 튀어나오듯 겨울이 급습했다. 환경관리원과 함께 한 하루. 상처투성이인 그들의 어깨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시 한번 김씨가 포대를 들었다. “이건 안 되겠다. 헬프 미.” 원동호(43) 반장이 달려왔다. 둘이 맞잡아 던진 포대는 투포환처럼 트럭 위 장락훈(44)씨 발밑에 떨어졌다. 장씨는 포대를 실컷 짓밟아 최대한 작게 만들었다. 청소부에서 환경미화원을 거쳐 환경관리원으로. 지자체마다 미화뿐 아니라 계도와 홍보·단속까지 점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위상을 높여주면서 이름도 변했다.

어깨는 괜찮습니까.

장락훈=“명색이 헬스트레이너 출신인데도 여러 번 어깨를 다쳤어요. 9개월 휴직도 했다니까요. 스트레칭 후 업무에 들어가는 몇 안 되는 고급 직업이죠(웃음).”

김준실=“제설 작업을 하다 미끄러져 어깨 회전근을 다쳤어요. 부상을 달고 삽니다. 보세요. 신발 발등 부위에 보호 금속판이 박혀 있어요. 바닥도 그렇고요.”

원동호=“그런데 여긴 너무 어두운데. 잘 안 보여서 바닥에 낀 살얼음에 미끄러지거나 못이나 깨진 유리에 다칠 위험이 있어요. 다른 곳부터 돌죠.”

잠시 상의하던 이들은 트럭을 돌려 헤드라이트를 작업 장소에 비추도록 했다. 형광 노란색 작업 유니폼에 덧댄 야광 밴드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신속, 정확. 하지만 곧 이은 한마디가 기자의 짧은 환상을 깼다. “아이고.” 장씨가 팔뚝 근육이 터져라 건축 폐기물을 옮기며 말했다. “건축 폐기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 골칫덩이입니다. 여름엔 악취로 고생하고요. 특히 겨울엔 낙엽 수거는 물론 눈과 얼음도 함께 치우니 고생 시작이죠.”

이들 세 명은 한 조가 돼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15곳이나 되는 청소 구역을 돌아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23년 환경관리원이 속해 있는 위생 및 유사 서비스업 직종의 재해자는 3885명에 달했고 이 중 93명은 사망했다. “저길 보세요.” 고양 중앙로를 화물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새벽녘 거리 청소를 하다 저런 화물차나 술이 덜 깬 채 운전하는 차량과 부닥치면 끝입니다. 회식이 많은 연말연시엔 훨씬 더 심하죠.” 그래서 정부는 주간 작업을 권고하고 있고 고양시도 겨울철 출근 시간을 오전 7시로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거리환경관리원’이다. 무단 폐기물을 수거하고 거리를 청소한다. 아파트와 골목을 돌며 종량제 쓰레기와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하는 ‘수거·운반환경관리원’은 대부분 민간 위탁업체 소속이다. 이 둘을 합친 전국의 환경관리원은 4만여 명. 그런데 수거·운반업체 근무자의 40.4%는 야간 근무를 선호한다.

“왜 그러겠어요. 일하는 우리나, 시민에게나 불편함을 덜려는 거죠.” 지난달 28일 새벽 4시에 만난 수거·운반환경관리원의 설명이다. 이들의 일처리 능력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한겨울엔 바짝 얼은 쓰레기봉투를 들어 올리려 쇠꼬챙이를 쓰기도 한단다.

지자체 소속 환경관리원은 일이 고되지만 ‘워라밸’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최근 채용 경쟁률이 평균 20대 1에 이른다. 지난 10월 경주시에선 39.4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영규(26)씨도 이렇게 험난한 경쟁률을 뚫고 올해 직장을 얻었다. 그는 이날 도로변 청소를 했다. 본격 추위가 시작되는 날 그는 내의를 포함해 상의만 다섯 벌을 겹쳐 입고 있었다. “수거관리원은 움직임이 덜 해 많이 껴입지만 저는 활동량이 많아 적게 입은 편입니다. 이런 ‘오겹살’ 정도면 버틸 만하죠. 시민을 위해 새벽부터 거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 제 방 청소보다 흐뭇하네요.”

장씨도 말을 보탰다. “제가 입사한 10년 전만 해도 미화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어요. ‘너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고 부모가 아이에게 속삭이는 게 정말 들렸다니까요. 이젠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날도 아들을 만나러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여성이 청소 현장을 찾아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뿌듯할 때도 있겠습니다.

장락훈=“광고처럼 정말 박카스를 주시는 분도 계세요. 요즘처럼 추울 땐 따뜻한 커피면 생큐죠(웃음).”

김준실=“초등학생들이 크리스마스에 편지를 보내왔어요. ‘추운데 아저씨들 덕분에 세상이 깨끗해진다’고요. 뭉클했어요. 화답으로 산타처럼 초콜릿과 사탕을 들고 그 초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속상할 때도 많겠고요.

장락훈=“거리 청소를 하고 있는데 들고 있는 쓰레받기에 누군가 아무 말도 없이 쓰레기를 툭 던질 때가 있어요. 제가 쓰레받기가 된 기분이 들죠.”

오전 10시30분 고양시 적환장. 이날 오전 여섯 곳에 들러 수거한 쓰레기는 스티로폼 덕분에 가벼운 편인 650㎏. 보통 800㎏이고 건축 폐기물이 많은 날은 1t에 이른다. 이른 점심으로 함께 먹은 해장국이 추위에 언 몸을 스르르 녹였다. 오후에도 아홉 곳을 더 돌았다.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 새벽 4시. 환경관리원들은 여느 날처럼 트럭에서 내려 전광석화처럼 일을 처리했다. 골목에선 낙엽과 눈도 치웠다. 그리고 한 시간여 뒤. 직장인들이 말끔해진 거리로 나와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