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국내 일감 뚝… ‘공급망 핵심’ 터빈공장 인력 썰물 [심층기획-해상풍력 2.0 시대]

2025-07-16

(2회) 목마른 韓 공급망업체

풍력터빈 양대기업 중 하나인 ‘유니슨’

직원 207명→141명… 매출 9분의1토막

2016년 풍력사업 철수 현대중공업 비롯

186개 달하던 관련업체 66개로 급감

中, 내수 발판 삼아 10년간 19%씩 성장

최근 5년간 국내 설비 증가율은 8.8%뿐

韓 10㎿급 만들 때 中·유럽선 20㎿ 개발

“시장 생태계 위한 장기 수요 로드맵 절실”

널따란 공장 부지 한편에 놓인 창고 같아 보이는 컨테이너 가건물. 동굴처럼 길쭉한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10명 남짓한 직원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상자 주변을 작은 병정처럼 움직이고 있다. 깊은 통로를 앞에 두고 고개를 들면 거의 천장에 붙어있는 노란색 크레인에 ‘유니슨’이라고 작은 간판이 달렸다.

이 하얀색 상자의 명칭은 나셀. 풍력발전기는 크게 네 부위로 나뉜다. 지면 또는 해저에 심는 ‘하부구조물’, 바람에 회전하는 부분인 ‘로터’, 발전기 기둥을 칭하는 ‘타워’,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담아둔 거대 상자인 ‘나셀’로 구분한다. 나셀은 풍력발전기를 떠올릴 때 날개(블레이드) 뒤로 뒤통수처럼 나와 있는 부분으로, 바람으로 발생한 회전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발전기, 회전 속도를 높여주는 증속기(기어박스),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전력변환장치(인버터) 등 전력 생산에 꼭 필요한 부품들이 조립돼 있는 패키징이라 생각하면 된다. 통상 하부구조물과 타워를 제외하고 로터와 나셀을 총칭하는 ‘풍력터빈’을 제작하는 기업은 국내에 두산에너빌리티와 유니슨 두 곳뿐이다.

◆“공장 청소하다가 3년 만에 들어온 일감”

지난달 26일 방문한 경남 사천 유니슨 공장에서는 강원 태백시에 건설 중인 하사미 육상풍력단지에 필요한 4㎿급 나셀 4개를 제작 중이었다. 유니슨은 지난해 8월 발전사업자인 코오롱글로벌과 풍력터빈 4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지난달 말 방문했을 때 공장에 완성된 나셀은 하나만이고 몇몇 직원들은 나셀 안에 넣을 발전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번달 말인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직원들은 주말도 없이 근무 중이라고 임민수 유니슨 기술고문은 전했다. 나셀 4개 제작부터 시험, 출하에 잡은 기간은 3∼4개월로 사천공장은 지난 4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1년 중 이렇게 제작 일정이 있는 기간이 몇 개월 정도 되는지 물으니 임 고문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올해 일이 제일 없었고 근 3년 정도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동안 10㎿급을 개발하고 (공장) 정리정돈하고…”

이사이 2022년 207명이던 유니슨 직원 수는 16일 기준 141명으로 줄었다. 매출은 연결 기준 2022년 2392억원에서 지난해 257억원으로 급감했다. 사천공장 준공 당시이던 2007년만 해도 ‘국내 최대 풍력발전기 공장’ 내지는 ‘국내 유일 풍력 기자재 통합생산 공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사미 프로젝트로 간만에 활기를 되찾은 공장이 됐다.

두산에너빌리티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두산중공업 이름으로 2개 풍력단지에 11개 터빈을 공급했다. 연도별 수주 건수는 차이가 있지만 2016년에는 실증단지 1기를 포함해 4개 단지에 26개 발전기를 신규 보급했다. 그러나 5년 사이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2021년 전남 장흥군에 3㎿급 6기를 출하하는 데 그쳤고 2022·2023년에는 이마저 바닥 쳤다.

2009년부터 유니슨에 재직 중인 박모 생산관리팀장은 “2012∼2016년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것 같다”며 “그때는 외산도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일이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2016년을 끝으로 조선업계 대기업 중 마지막까지 풍력사업을 버텼던 현대중공업도 철수했다. 한국풍력산업협회와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해상풍력 공급망 현황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풍력산업에 새로 진입한 국내 업체는 186개였다. 이 중 2019년까지 풍력산업 관련 업체로 남아있는 사업장은 90개(48.4%)에 불과했고 2022년에는 66개(35.5%)로 줄었다. 2020∼2021년 신규 사업체가 급증한 배경으로는 부품장비 등 제조업체가 아닌 발전사업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석을 진행한 이슬기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통계청 사업체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업체가 폐업하지 않고 풍력사업만 철수한 경우를 감안해 생존율이 아닌 잔존율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며 “진입 2년 후부터는 잔존율이 뚝뚝 떨어져 안정적인 수요 확보와 중소기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거리에 목마른 국내 풍력터빈 업체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10여년간 육상풍력이 활발히 보급된 뒤로 해상풍력은 수년째 거의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풍력산업협회가 집계한 최근 10년간 연도별 설비용량 증가율은 2015년 36.3%로 최고치를 찍고 2021년 한 자릿수로 고꾸라졌다. 2020∼2024년 5년간 우리나라 풍력설비 연평균 증가율은 8.8%에 그치는 반면 중국은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2013년부터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9.1%에 달한다. 국내 풍력시장이 위축될수록 기업의 생산 물량이 줄어들며 경제성은 악화했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유인이 떨어지며 다른 나라와 기술 격차는 벌어졌다. 유니슨과 두산에너빌리티가 10㎿ 터빈 상용화를 앞둔 사이에 유럽과 중국 터빈 업체들은 20㎿ 이상 제품을 개발했다. 기술이 쇠퇴하고 가격 경쟁력을 잃은 제품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풍력터빈을 대량 생산하는 업체는 글로벌 3대 기업으로 꼽히는 베스타스(덴마크), 지멘스가메사(독일·스페인), GE버노바(미국)와 중국 기업 정도다. 김범석 제주대 풍력공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풍력발전을 ‘내수시장이 기업의 투자 결정에 아무 마중물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시장 없이 공급망은 있을 수 없다”며 “공급망부터 만들어 수출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은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 터빈 기업을 언급하며 “공급망은 우수한 편이지만 국내에 준공된 단지가 적어서 경험이 굉장히 부족하다”며 “자원안보특별법과 입찰 시 국산화율 배점화를 통해 한시적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성장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정책적 일관성을 띠고 인프라 투자를 비롯해 시기별 로드맵만 명확히 내놓아도 기업은 그에 따라 빠르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천공장에는 한때 발전사업자가 서둘러 주문했던 제작물량이 설치가 늦춰지면서 2년씩 공장 구석에서 보관한 적도 있다. 주기적으로 잘 작동하는지 인력을 들여 점검해야 하는데 이 또한 기업에는 비용이다. 박 팀장은 현재처럼 공장이 돌아갈 때 기분이 좋다면서 “기업은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설비 투자 결정을 중장기 계획이 있지 않으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원서 유니슨 대표이사는 “장기 수요 로드맵이 제시되고 시장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기자재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국내 공급과 동시에 아시아 시장 수출 기회까지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사천=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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