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86 시절의 PC. 마우스를 찾아볼 수 없다!
PC를 사용할 때 마우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로 제작된 Windows를 운영체제로 굴리지만, 그마저도 없던 시절엔 오로지 DOS나 OS/2가 PC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MS-DOS를 쉽게(?) 설명해주는 메뉴얼 영상
DOS 시절 운영체제의 공통점은 바로 CUI, 문자 기반 인터페이스였기 때문에 모든 명령어는 키보드로 타이핑해 입력해야 했다. 덕분에 키보드 영타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었지만, 파일 하나를 찾을 때마다 CD 명령어로 디렉터리를 하나씩 찾아 들어가 DIR을 타이핑해야 했다. 그것도 디렉터리에 파일이 많거나 파일명이 복잡할수록 난이도는 상승했다. 하지만, 늘 익숙한 작업이라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이었다. 이런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해 PC 사용 난이도를 단번에 낮춰버린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MDIR!
MDIR은 터보 파스칼이라는 언어로 만든 DOS 셸 프로그램이다. 현재 우리가 요긴하게 사용하는 Windows의 파일 탐색기처럼 화면 가득히 디렉터리를 트리 구조로 들어갈 수 있게 유저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일일이 타이핑하던 사용자가 보기엔 그야말로 편안함의 극치였다.
이런 편리한 국민 프로그램 MDIR은 프로그래머 최정한 씨가 개발했는데, 당시 PC를 어려워했던 여자친구를 위함이었다고 한다. 상당히 로맨틱한 탄생 비화다. 세월이 흘러 그분과 결별설(?)도 돌았지만, 다행히 결혼까지 성공하여 잘 살고 있다고 한다.
▲ MDIR을 사용하는 모습
<출처 : Youtube 너부장이야기 채널>
MDIR을 자세히 떠올려보면 우선 좌측 창에 디렉터리가 뜨는데 화살표 키로 상, 하 이동 후 엔터키를 치면 해당 디렉터리에 입장을 하게 된다. 그럼 오른쪽 창에 디렉터리 안의 파일이 나열된다. EXE, COM, BAT 확장자를 가진 파일을 실행시킬 경우 역시 상, 하 화살표 키로 이동, 선택 후 엔터를 치면 된다. 파일명이 길어도 파일명이 복잡해도 실행 가능 확장자는 눈에 잘 띄는 색상으로 따로 표시되기 때문에 찾기도 매우 수월했다.
또한, PC 통신에 압축파일로 데이터를 주고받던 시기라 ZIP, LZh, ARJ, RAR 등 압축파일 확장자를 선택 후 엔터를 치면 바로 압축 해제가 가능했다. 거기에 파일 압축 프로그램은 기본 명령어 뒤에 옵션을 붙여 분할 압축, 서브 디렉터리까지 압축 등 다양한 변수를 적용할 수 있는데, MDIR을 통해 진행하면 중간에 입력 상자를 띄워 옵션을 타이핑할 수 있었다. 물론 해당 압축 프로그램이 PC에 깔려있어야 가능한 기능이다.
하지만, 한 가지 반전이 있었으니 누구나 쉽게 설치해 쓰던 MDIR이 셰어웨어였다는 것. 셰어웨어는 무료 버전을 먼저 사용해 보고 중요 기능이나 확장 기능을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배포 방식이다. 맨 처음 MDIR을 실행시키면 나오는 소개 창에 Unregistered version이라고 나오는 게 그 증거다. 물론 무료 버전도 거의 모든 기능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다른 드라이브로의 파일 복사나 연계 유틸리티 사용은 막혔었다. 물론 돈을 내고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MDIR은 위기도 있었다. 셰어웨어로 판매되어 국민 프로그램으로 등극하기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자 국세청에서 세금을 6억 원이나 때려버렸었다고 한다. 탈세가 의심되었다는 사유로 선제 고지를 했다고. 다행히 사용료 지불이 거의 없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6억 원은 내지 않았지만, 국민 프로그램이 단번에 사라질 위기였다. 등록판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순간이었다.
또한, MDIR은 표절 의심도 많이 받았다. 당시 유명 프로그래머인 피터 노턴의 ‘노턴 유틸리티’ 속 NCD, 센트럴 포인트에서 개발한 PC TOOLS 패키지에 포함된 PC 쉘과 기능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란 화면에 하얀 글씨였던 NCD는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쉽게 피곤해진다는 의견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국산 프로그램이라는 자부심이 MDIR의 표절 의혹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후 MDIR은 MDIR II, MDIR III까지 판올림 되며 기능이 더욱 강력해졌는데, DOS 버전의 최종인 MDIR III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유명세가 높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Windows 95의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대중화되고 마우스 보급이 널리 이루어지면서 MDIR의 존재는 잊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DOS를 사용했던 사람들에겐 V3, 아래아한글과 더불어 영원히 회자될 국산 프로그램이라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대한민국이 2000년대 IT 강국으로의 발돋움할 수 있는 씨앗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순수한 열정으로 MDIR을 개발해 주신 최정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c) 비교하고 잘 사는, 다나와 www.dana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