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같은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표현이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알려진 사람이 개발한 '비트코인' 등장을 계기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탈중앙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가상자산이 하나씩 출시되었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커질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부터 세계적인 코인 발행(ICO) 붐(boom)이 일었고, '블록체인'이라는 타이틀 속에 2016년 약 2조원 수준에 불과했던 국내 가상자산 시장 연간 거래금액은 600조원에 이를만큼 과열됐다. 많은 코인들이 하루에도 40% 이상 급등락하며, '이성과 혁신'보다는 '투기와 욕망'이 시장을 지배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가상자산과 금융시장의 연계성을 차단하고,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가상자산 ICO 및 법인 실명계좌 발급 금지, 계좌 실명확인 제도 도입 등 규제 장치를 마련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연이은 해킹 사건도 있었다. 수천억 원대 가상자산이 탈취되면서, 거래소 보안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의 보안성은 별개로, 거래가 이뤄지는 거래소의 보안은 이용자의 자산을 보호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이후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대응과정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다시 한번 급 성장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상승추세를 이어갔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상자산 투자 열풍이 일었다. 동일한 가상자산의 시세가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프리미엄' 개념이 보편화된 것도 이 시기다. 뜨겁던 가상자산 시장의 열기는 2022년 테라-루나 사태 등을 계기로 다시 한풀 꺾이게 되었다.
가상자산 시장 흥망성쇠 속에서, 가상자산의 효용성과 내재적 불안정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해외 주요국들도 가상자산 거래와 채굴 등 모든 행위를 국가적으로 금지한 중국을 제외하고, 이용자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가상자산 시장의 질서를 확립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통한 혁신을 촉진하는 조화로운 규율체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가상자산을 기존의 '증권법' '상품거래법'에 따라 엄격히 규제하되, 행정명령 등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방향을 마련해왔다. 대선이 끝난 지금, 실물·금융 시장에서 미국의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상자산 관련 제도 마련이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은 '자금결제법'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거래소에 해당하는 교환업자 진입·행위규제를 규율하고, 금융청(FSA)과 관련 협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가상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웹 3.0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EU에서는 세계 최초의 가상자산 기본법인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안(MiCA)'이 의회를 통과했고, 지난 6월부터 회원국에서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가상자산을 종류를 세부적으로 구분하고, 사업자의 공시의무, 고객자산 보호의무 등을 규정했다. 이와 함께, 거래지원 가상자산에 대한 내부자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규제도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7월 19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행위 규제 등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필수적인 사항부터 규율해나가고 있다. 특히,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이 안전하게 보관·관리되도록 규정하고, 거래소가 예치금 이용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한편, 해킹이나 전산장애 등 사고 발생 시 거래소가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보험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하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한 자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고, 거래소에서 이상거래를 감시하도록 하는 규정도 시행됐다.
법 시행 이후 네 달여가 지난 지금,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우리 시장의 왜곡 현상인 '김치프리미엄'이 감소, 10월 중순에는 '-' 프리미엄이 붙기도 하는 등 만연했던 과열 거래행태들이 안정화되고 있다. 또한, 종전에 지급되지 않던 예치금 이용료가 환급돼 연간 약 1000억원(원화거래소 예치금 5조원 기준)이 가상자산 이용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해킹이나 전산사고에 대비한 보험가입도 의무화되는 한편, '거래지원 모범사례' 등 자율규제 시행에 따른 업계의 자체적인 노력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건강하지 못한 토양에서 나무가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없듯이, 가상 자산시장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이용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투명하고 신뢰받는 시장을 확립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가상자산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에 대한 조사를 완료, 검찰에 통보하는 등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향후에 거래소가 영업을 종료하는 경우에도 이용자 자산이 안전하게 반환될 수 있도록 행정적·제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과 이에 기반한 디지털 자산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수립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우선, 시장 수요가 큰 토큰증권(STO)의 발행 허용 등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전자증권법' '자본시장법' 개정을 위한 국회 논의를 적극 지원할 것이다.
또, 지난주 출범한 '가상자산위원회'를 통해 법인실명계좌 발급, 스테이블코인 관련 이슈, 가상자산 2단계법 논의를 비롯해 블록체인 산업 육성 방안 등을 관계부처, 민간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나갈 예정이다. 가상자산 시장에는 국경의 개념이 모호한 만큼, 적극적 국제 협력을 통해 글로벌 규제 정합성을 맞추는 노력도 계속할 것이다.
우리 가상자산 시장은 성장과 위기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 국가 경제의 관점에서 가상자산의 효용성을 보여준 사례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향후 가상자산이 비이성적인 '투기와 욕망'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산업 그리고 우리 경제에 실질적인 '편익과 혁신'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와 혁신의 조화로운 균형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하고, 국민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부, 업계, 이용자들이 함께하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필자〉1990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은행 자문교수,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 국제결제은행(BIS) 자문역, 대한상공회의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 5월 17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지명됐다. 대선캠프에서는 경제정책본부장을 맡았고,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경제1분과 인수위원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