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가 한국에서 각형 배터리 조달을 추진한다. 지금까지 중국 CATL에서만 공급받았던 제품으로, 한국을 포함한 신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의도다. 완성차 업계에서 각형 배터리 채택이 적극 늘고 있는 가운데 테슬라 행보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국내 대표 이차전지 제조사에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 개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처를 다각화하려는 시도로, 한국 기업이 테슬라 각형 배터리 공급망에 진입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테슬라는 전기차에 주로 원통형 배터리를 적용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일본 파나소닉에서 원통형 배터리를 조달하거나 자체 생산한다. 각형 배터리는 '모델 Y' 등 테슬라 일부 차종에만 적용됐다. 중국 CATL이 전량 공급하고 있다.
테슬라의 이번 요청은 각형 배터리 도입을 확대하는 동시에 중국 이외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가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있는 만큼 테슬라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게 과제다. 그 대안을 한국에서 찾은 셈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각형 배터리 도입을 확대하는 추세다. 제너럴모터스(GM)는 전기차에 주로 파우치형 배터리를 탑재했으나 각형 배터리 채택을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과 협업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2030년에 생산하는 전기차 80%에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고, 파우치형을 활용하는 볼보도 각형 비중을 늘리고 있다.
테슬라의 한국 공급망 추진은 전기차에서 입지가 높아지는 각형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출하량이 글로벌 선두권인 데다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번 공급망 확대로 각형 배터리 수요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형 배터리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여,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 모두 양산 및 개발을 추진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형 배터리가 급부상한 건 일차적으로 안전성이 높아서다. 각형 배터리는 사각형 모양 알루미늄 금속 캔에 패키징돼 외부 충격에 강한데, 전기차 화재 사고와 맞물려 안전하다는 강점이 부각되고 있다.
'셀투팩(CTP)' 기술 적용이 유리하다는 것도 각형 배터리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CTP는 기존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배터리 구조에서 중간 모듈을 생략하고 배터리 셀을 팩에 바로 조립할 수 있다. 한정된 전기차 하부 공간에 더 많은 배터리 셀을 배치,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차량 주행 거리를 늘릴 수 있다. 업계에서는 CTP 기술 구현에 가장 유리한 배터리 폼팩터로 각형을 꼽는다.
특히 전기차 업계에서 리튬인산철(LFP) 도입 확대가 각형 배터리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FP는 기존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지만 에너지 밀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며 “CTP 구조를 적용하면 더 많은 배터리 셀을 채워넣어 기존 LFP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만큼 각형 배터리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슬라가 CATL에서 조달하는 각형 배터리도 LFP 기반이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