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꼬마들 팽이 들게 한 '장난감 대통령'…"한국판 헌트릭스 만들 것"

2025-11-23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의 문화훈장 수여자 17명의 면면을 공개했다. 소설가 황석영, 첼리스트 양성원 등 예술인들의 이름 끝에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화관 문화훈장을 수상한 최신규 초이크리에이티브랩(초이랩) 대표(69)였다.

기업인이 문화훈장을 받는 게 의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혹은 키워본 부모라면 최 대표가 만든 작품을 모를 수 없다. 그는 국내 기반이 열악했던 2000년대 초반, 장난감 팽이 열풍을 일으킨 ‘탑블레이드’를 시작으로 ‘헬로카봇’, ‘터닝메카드’ 등을 기획·제작한 국내 1세대 문화 콘텐트 기획자다. 또 이들 작품을 발전시킨 극장판 헬로카봇, 터닝메카드, 공룡메카드 시리즈의 총감독을 맡으며 삽입된 OST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2015년부터는 초이랩 대표를 맡으며 가수 매니지먼트와 음악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2023년엔 제32회 서울가요대상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일 서울 목동의 초이랩 사무실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최 대표가 내민 명함엔 이름과 연락처 대신 그가 만들고 기획한 캐릭터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만화 헬로카봇의 합체 로봇 ‘펜타스톰’, 터닝메카드의 주인공 소년 ‘나찬’, 신비한 능력을 가진 마법 소녀 ‘체리’…. 명함 아래엔 ‘장난감 대통령’이라는 그의 별명도 작게 쓰여져 있었다.

최 대표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최고 영예를 안게 된 것에 대해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 본 과감한 재투자들이 지금의 명예를 가져다 준 것 같다”고 답했다. “2000년대만 해도 한국 애니메이션들은 생명력이 길지 않았어요. 어마어마한 제작비 때문이었죠. 예를 들어 탑블레이드 성공 후에도 터닝메카드는 제작자를 구하기 어려워 제가 사재 180억원을 털어야 했어요. ‘재투자’를 위한 준비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장난감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뒤에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기획합니다. 장난감은 다음 작품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주요 수익원이기 때문이죠.”

수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준 최 대표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줄곧 고단했다. 아버지는 세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5남매를 키웠다. 학교는 초등 3학년 때 중퇴했다. 일찍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에 열세 살엔 서울 영등포 금은방에 들어가 세공기술을 배웠고, 이후 주물공장에 들어가 금형·주조기술을 익혔다. 최 대표는 “그래도 어릴 때를 생각하면 꽤 행복하다”고 했다. “가끔은 행상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하늘을 쳐다보던 12살에 멈춰있는 것 같아요. 길가에 지나다니는 개미를 보면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먹이를 주고,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가는 것만 봐도 즐거웠어요. 제 콘텐트 감각은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빚지고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인연은 1983년 한 완구업자의 부탁으로 장난감 자동판매기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독성 없는 끈끈이 장난감이 히트를 친 후 본격적으로 장난감 개발에 발을 담궜다. 이후 ‘하얀마음 백구’ 등 애니메이션 제작에 투자했던 최 대표는 일본 완구기업 다카라토미와 합작한 탑블레이드를 내놓으며 본격적인 콘텐트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됐다. 줄을 당기면 팽이가 발사되는 탑블레이드 팽이는 국내외에서 1조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때 장난감과 애니메이션에 미쳐있었던 그가 요새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 애니메이션과 완구 콘텐트를 만드는 초이락컨텐츠컴퍼니를 아들 최종일씨에게 맡긴 2015년 이후 최 대표는 줄곧 연예기획사 대표로, 작곡가로서 살아왔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사업의 특성 상, 젊은 아들이 사업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빨리 일을 물려줬어요. 그런데 할 일이 없으니 3개월 내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아들 사업에도 괜히 훈수를 두고 싶었고요. 그래서 노래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죠. 작곡가 선생들을 찾아가 레슨도 받고 가수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듣기 시작하다 결국 연예기획사 사업을 시작하게 됐네요.”

초이랩에는 현재 트로트 가수 김연자, 황민우뿐만 아니라 아이돌 하이키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소속돼있다. 그는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헌트릭스처럼 음악과 스토리텔링이 융합된 형태의 아이돌 캐릭터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탑블레이드 애니메이션 속 팽이 대회를 실제 오프라인 대회로 끌어냈듯, 오프라인과 온라인 세계관을 오가는 엔터테이너를 만들겠단 구상이다.

“어느 날 하이키 소속사 측에서 회사가 어렵다며 제게 찾아와 인수를 부탁했어요. 수차례 거절하다 회사에 온 멤버들을 직접 보곤 마음이 돌아서서, 노래를 듣지도 않고 계약서를 쓰자고 했죠. 이렇게 제가 아이돌 분야의 일을 하게 될 지 누가 알았나요. 하지만 음악과 애니메이션, 굿즈를 융합한 사업을 구상하는 지금은 이 모든 게 운명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 가지 분야를 다 깊숙이 들여다본 사람은 대한민국에 저 밖에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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