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인력과 척력이 발생하는 순간

2025-08-11

우리가 타인에 대해 가깝게 느끼는 감정을 부르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사랑’이 떠오르지만 이 말은 테두리만 남고 안은 텅 빈 관념어처럼 변한 감이 없지 않다. ‘애착’은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지극히 가까운 관계에 한정된 느낌을 준다. 케이티 기타무라의 장편소설 『친밀한 사이』를 읽었을 때 우선 나를 건드린 것은 바로 이 단어, ‘친밀감’이었다. 친밀감은 감정적으로 강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펼쳐져 있으면서 주의 깊게 숙고해볼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통역사로 고용되어 이 도시에 왔다. 통역사들은 여러 언어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한 공통점이 있다. 그녀를 동심원 삼아 공적인 관계나 사적인 관계 속에 친밀감을 형성하는 여러 커튼들이 만들어지고 겹쳐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국제재판소는 ‘본성상 고도의 연극이 펼쳐지는 곳’이며 보통 전쟁범죄를 일으킨 장군이나 정치인이 피고가 된다. 그들의 ‘목소리’가 되는 동안 주인공은 이 복잡한 공간에서 자신과 연결된 사람은 오로지 끔찍한 전쟁범죄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도 모르게 질책하는 목소리로 통역을 하던 통역사를 전범이 고개를 들어 노려보는 장면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한편 도시에 막 도착한 이방인으로서 그녀에게는 친구와 연인이 생겨나지만 이 관계들은 다소 막연하게 변주된다. 그녀가 끌린 아드리안은 아내와의 이혼을 해결하기 위해 리스본으로 떠나면서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나는 나 자신을 쉽게 버려지는 사람으로, 예비 부품처럼 챙겨두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관계의 인력과 척력이 발생하는 내밀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일본계 미국작가인 케이티 기타무라는 감정의 통역사와 같이 섬세하고 정확한 문장을 사용해서 인간과 인간, 말 사이의 담겨있거나 유실된 것들을 헤아린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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