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이 걸리더라도 산업적 임팩트가 큰 기술 개발에 도전할 것입니다.”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 원장은 최근 경남 창원시 본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앞으로 1000억 원대 가치의 기술들을 개발해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월드 클래스 기업들에 이전하고 향후 7년 내 나스닥 등 해외 증시에 상장할 수 있는 창업 기업을 길러내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기연의 행보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는 파격적이다. 출연연과 대학을 포함한 국내 공공 연구기관의 기술이전 총수익이 미국 대학 한 곳에 못 미칠 만큼 공공 연구개발(R&D)의 기술사업화 역량이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연연의 기술이전 건당 수익도 통상 수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열세에도 김 원장이 전기연을 전기·전력 분야 R&D를 넘어 기술사업화 거점, 이른바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 기관’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것이다.
출연연 중 전기연이 특히 기술사업화를 서두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와 함께 전력 기술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어(전선)·전력망·전력반도체 등은 AI·데이터센터의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신기술로 평가받는다. 김 원장은 “구리 대신 그래핀 등 신소재로 전선을 만들어 전력 전송의 효율을 높이는 ‘경량 와이어’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라며 “반도체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더 많은 송전망을 세워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대하는 국가적 고민도 있는데 개발이 오래 걸리더라도 경량 와이어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포함한 3대 장기 R&D 프로젝트를 선정해 집중 추진 중이다. AI 반도체 소비 전력을 효율화해주는 전력반도체도 신규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 원장은 “일본 소재 기업 오브레이와 손잡고 전력반도체의 일종인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을 시작해 단결정 박막 성장과 초기 수준의 다이오드 소자 개발까지 성공했다”며 “이 역시 완성까지 30년 정도 걸리겠지만 임기 내 기술사업화의 씨앗을 잘 뿌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출연연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맞춰 파급력이 크면서도 민간이 먼저 뛰어들기는 힘든 고난도 기술인 딥테크 R&D와 사업화 거점이 돼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지론이다. 이에 잘게 쪼개진 소형 연구 과제 수주, 논문·특허 같은 정량적 성과 평가 등 그간의 관행도 손볼 방침이다. 그는 “올해부터 연말 성과 평가 시 특허출원 수를 안 보겠다고 구성원들에게 선언했다”며 “평가 시즌마다 부실 특허를 양산하지 말고 대형·장기적 R&D에 도전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장기 프로젝트 참여자는 개인 평가도 유예해준다.
김 원장은 또 “R&D 기획 단계부터 돈 되는 기술이 무엇인지 찾고 기술이전이나 창업 중 어떤 방법이 유리할지 검토하는 기술사업화 기획도 병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련 인력도 지금의 2배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변리사와 특허법인 출신 민간 전문가를 높은 인센티브로 영입하고 안산분원에서 근무하도록 해 우수 인재를 확보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