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 돌풍 '주류 다크호스'…"K술로 세계 문 두드릴 것"[CEO&STORY]

2025-08-13

“국내 주류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공격적인 브랜드 전략과 독창적인 제품 기획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종합 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랜 기간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칠성음료 등 대형 제조사들의 전유물이었던 국내 주류 시장에 4년 전 주류 스타트업 ‘부루구루’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생레몬 하이볼’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 ‘효민사와’ 등 대형 히트 상품을 연달아 탄생시키며 전국 편의점과 대형마트 매대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 ‘K하이볼’ 돌풍을 이끌고 있는 부루구루의 박상재(사진) 대표를 11일 서울 서초구 부루구루 본사에서 만났다.

“싫어해서 더 잘 만들었다”…K술로 세계 무대 노린다

박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재학 시절, 기숙사에서 맥주를 직접 만드는 데 취미를 붙였다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그는 맥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싫어해서’ 잘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맥주의 단점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세계 대회 우승작을 탄생시켰다는 설명이다. “소주 다음으로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렇다 보니 맛의 단점이 더 잘 보였고 그걸 없애고 싶은 마음이 컸죠. 좋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싫어했기 때문에 더 잘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2016년 수제맥주 양조장을 창업했다가 2017년 콤부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부루구루를 만들었다. 발효 음료라는 점에서 맥주와 제작 과정이 유사했지만 한국에서 콤부차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았다. 결국 코로나19 이후 흑자 전환에 실패하면서 회사는 2021년 주류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부터 하이볼과 위스키·맥주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종합 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주류 사업 진출 이후 부루구루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 CU에서 판매한 ‘생레몬 하이볼’은 출시 3개월 만에 1000만 캔이 판매됐고 현재 누적 3500만 캔을 돌파했다. 올해는 지드래곤과 협업한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을 선보였는데 초도 물량 88만 캔이 정식 출시와 동시에 모두 품절됐고 출시 두 달 만에 600만 캔이 팔려나갔다. 이렇게 인기를 끈 ‘밀리언셀러’ 제품만 10종 이상이다. 그 결과 부루구루의 매출은 2023년 150억 원에서 지난해 425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뛰었고, 약 57억 원 손실이었던 영업이익도 24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생레몬 하이볼’로 흥행…3500만 캔 팔려

부루구루의 ‘생레몬 하이볼’은 술에 실제 과일인 레몬 조각을 넣어 ‘RTD(Ready To Drink·재료를 섞어야 하는 주류를 바로 마실 수 있도록 제조한 제품) 2.0’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제품들이 향료나 건조 과일을 사용한 데 비해 생과일을 직접 투입해 신선함과 시각적 차별성을 극대화하며 RTD 시장을 키운 것이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생레몬을 술에 넣는다는 발상 자체가 어려웠다”면서 “미생물 안전성, 잔류 농약 문제, 대량생산 가능성 등 수많은 장벽이 있었기에 사실은 유일하게 출시 직전까지 반대했던 상품”이라고 말했다. 30여 명의 연구개발(R&D) 인력이 9개월간 매달린 끝에 완성된 ‘생레몬 하이볼’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캔을 따자마자 레몬이 두둥실 떠오르는 영상과 함께 화제를 모으며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국내 넘어 글로벌로…K하이볼 돌풍 이끈다

박 대표는 한국이 세계적인 반도체와 조선, K팝과 드라마를 만들었지만 주류 분야에서는 해외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을 세운 전례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같은 공백을 기회로 보고 있다. 단순히 술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K술이라는 새로운 문화 카테고리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키겠다는 목표다. 박 대표는 “한국 술은 다양성과 품질 면에서 잠재력이 높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며 “처음부터 글로벌을 겨냥한 기획과 브랜딩,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루구루의 글로벌 전략에 불을 붙인 것은 지드래곤과의 협업이었다. 지드래곤이 제작에 참여한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은 출시 두 달 만에 600만 개가 팔렸다. 특히 홍콩과 대만의 1차 수출 물량 수십만 캔이 완판된 뒤 재주문에 들어갈 정도로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현지 유통 채널에서는 추가 입고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지드래곤을 모델로 기용한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없지만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한국 아티스트는 있다”며 “K푸드와 함께 K술도 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드래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카피캣 제품을 막는 동시에 해외시장에서 차별화된 브랜드 파워를 확보하는 전략을 세웠다. ‘생레몬 하이볼’의 흥행 이후 비슷한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나자 이를 막기 위해 IP 협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모방은 최고의 찬사지만 지드래곤이라는 브랜드는 따라 할 수 없다”며 “덕분에 글로벌 진출에서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부루구루는 지드래곤과의 장기 계약을 논의 중이며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공동 마케팅을 지속할 계획이다.

수출 위해 공장 증설, 해외 지사 설립도

부루구루는 현재 대만·홍콩·싱가포르·호주 등 20개국 가까이 수출하고 있다. 연내에는 30개국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호주 시장에는 올해 11월 전용 제품을 출시하며 현지 제조 시설 인수도 추진한다. 중국·미국·일본 등 대형 시장에도 치밀하게 진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주세법과 소비자 취향에 맞춘 현지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만에서는 별도의 패키지 디자인을 적용하고 알코올 도수 규제에 맞춘 전용 제품을 선보이는 식이다.

빠른 성장세에 맞춰 생산능력도 대폭 늘린다. 최근 파주에 국내 최대 규모의 하이볼 전문 공장을 준공해 올 10월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이에 따라 파주 단일 공장에서만 연간 2억 캔 이상의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는 가평·파주 공장을 합쳐 국내 연간 1억 4000만 캔까지만 생산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파주에 기존 대비 6배 큰 규모로 공장을 짓고 자동화 시설이나 품질관리 등이 글로벌 기업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수준으로 만들었다”며 "중국·일본·호주 같은 경우는 하이볼 등 RTD 시장이 워낙 커서 발주 단위 자체가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생산능력을 대폭 키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저가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GS25와 협업한 ‘양사미 하이볼’은 6캔 9900원이라는 가격으로 출시돼 가성비 소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박 대표는 “2040 소비자 조사에서 가격 민감도가 높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며 “프리미엄과 중저가 라인을 병행해 시장을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부루구루의 목표를 ‘글로벌 종합 주류 기업’이라고 명확히 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문화를 담은 브랜드”라며 “한국 술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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