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론] 이경원 대기자를 추모하며

2025-03-12

이경원 대기자가 지난 토요일 오전 8시17분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언론인 대부로 불리는 이경원 기자는 미 주류 사회에서는 K.W. Lee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철수 사건을 파헤쳐 무죄를 증명한 것으로도 유명한 탐사 보도 대기자이다.

이철수 사건은 할리우드에서 ‘True Believer’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사건의 주역인 이경원 기자에게는 전혀 알리지도 않았고 주인공은 백인으로 둔갑해 백인 영웅을 만들기도 했다.

이철수 사건은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중국 갱단원 살인 사건으로 비롯됐다. 사건의 용의자로 이철수가 체포되었는데 동양인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백인 여행객들이 이철수를 지목하면서 유죄 평결을 받고 수감됐다.

중국 갱단들의 싸움에 엉뚱하게 영어가 미숙했고 미국에 이민온 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한인 이철수가 누명을 쓴 것이다. 수감 중 백인 갱단원들이 이철수가 라틴계 갱단 소속이라고 믿고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는데 이철수가 칼을 빼앗아 백인 죄수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여 사형수가 되었다.

이경원 대기자는 당시 새크라멘토 유니온지 탐사보도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철수 사건을 끝까지 파헤쳤고 이철수 구명 위원회를 결성하고 무죄를 증명하여 석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23년 줄리 하가 이철수 사건을 다큐 영화로 제작하여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이철수 사건이 최근 다시 부각됐다. PBS에서도 상영되었고 여러 대학과 커뮤니티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경원 대기자의 언론인으로서의 업적은 실로 눈부시다. 1950년대 동양인 최초로 미 주류 언론사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남부에서 백인 정치인들의 부정 선거를 파헤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이경원 대기자는 LA에서 ‘코리아타운 위클리’라는 영문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는데 매주 자신이 거주하던 새크라멘토에서 LA로 자동차를 몰고 왕복 운전하면서 신문을 발행했다. 당시 영어를 구사하는 한인의 숫자는 매우 적었고 결국 폐간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경원 대기자는 한국일보 영문판 편집국장으로 부임하면서 당시 사회문제로 부각된 한인 상인과 흑인 갈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1992년 LA 폭동 당시에는 한인 사회의 입장을 주류 언론에 보도하는 맹활약을 했다.

이경원 대기자는 25개 이상의 공로상을 수상했고 LA에는 이경원 기자의 이름을 딴 이경원 리더십 센터가 차세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필자는 이경원 기자와는 가까운 사이였다. 다행히 여려차례 인터뷰를 했고 영상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앞으로 차세대 교육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경원 기자는 또한 초기 한인 이민자들과의 구술사를 남겼는데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고려대학교 출판부에서 ‘외로운 여정’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경원 대기자는 미국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강사였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UC 리버사이드 대학교에서도 여러번 초청하여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2024년 4월 새크라멘토 주립대학 특강을 갔을 때 마지막으로 만나 필자의 책 파차파 캠프 영문판을 전해 주었다. 책에 사진들이 부족하다고 필자를 마구 야단을 쳤는데 요즘은 책에 사진들이 많이 있어야 주목을 받는다는 조언을 한 것이다.

이경원 대기자의 개인적인 삶도 파란만장했다. 소위 ‘나인 라이브스’ 즉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뜻으로 이경원 대기자를 비유하는 말이 될 것이다. LA 폭동 당시 응급 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간 이식 수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간 이식 수술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경원 대기자는 술과 담배도 즐겼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6월이면 97세가 되는 나이까지 오래 사신 것이다.

이경원 대기자는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는 물론 한인 사회에 많은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한인 2세들뿐만 아니라 아시안 아메리칸 그리고 타 인종 언론인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이경원 대기자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면서 후배들을 응원해 주세요.”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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