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회의 발언 ‘전임자의 2.6배’
파초선·콘크리트 등 비유 즐겨
‘특별한 희생, 보상’ 반복해 강조
“국민주권정부의 새출발을 시작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6월4일 첫 고위공직자 인선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오는 11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이 대통령의 입도 국민과 민생·경제를 핵심 키워드로 움직였다. ‘일하는 대통령’을 자처한 만큼 쏟아낸 말의 양도 전임 대통령보다 많았다. 특히 “평화가 밥” “5200만 시간의 가치” 등 특유의 비유·직설 화법을 활용해 국정철학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일부터 8일까지 총 15차례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모두발언을 생략한 지난 8월11일 임시국무회의를 제외하고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회당 평균 1564자(공백 포함), 원고지 8장 분량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까지 총 7차례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회당 1169자 분량의 모두발언을 했다. 발언 총량은 이 대통령이 2만1896자로 8184자인 윤 전 대통령의 약 2.6배였다. 취임 100일을 기준으로 이 대통령의 SNS 게시글 수는 총 243개(엑스 95개·페이스북 84개·인스타그램 64개)로, 같은 기간 55개(페이스북 44개, 엑스 11개)를 올린 윤 전 대통령의 4배 이상이었다.
다루는 주제도 민생·경제, 노동, 안보, 공직기강 등 다양했다. 경향신문이 국가학술정보분석서비스를 활용해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전수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국민’(57회)으로 나타났다. ‘사람’ ‘경제’가 각각 25·21회로 뒤를 이었다. 취임 후 근절을 강조해온 산업재해와 관련한 ‘사망’ 언급은 16건, 공급자 중심 행정 탈피를 지시하며 예로 든 ‘민원’ 언급은 15회였다. 이외에도 ‘권력’ ‘최선’ ‘책임’(각 14회), ‘현장’ ‘국회’(각 13회), ‘하청’ ‘안보’(각 12회), ‘민생’ ‘안정’ ‘재정’(각 10회), ‘평화’(9회) 등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 특유의 비유·직설 화법은 국정운영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어렵거나 논쟁적인 주제를 사물 등 특정 대상에 비유해 단순화한 뒤 공감을 끌어내는 식이다. 특히 비유 대상으로 즐겨 찾는 보조 관념은 ‘밥’이었다. 그는 6월4일 취임사에서 “안전이 밥이고, 평화가 경제”라고 말했고, 같은 달 24일 국무회의와 2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가 밥”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 7월13일 세계정치학회 개막식 연설문에선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공직사회를 ‘로봇 태권브이(V)’(취임 30일 기자회견)에 비유하며 선출 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직자의 영향력은 ‘중국 고전 <서유기> 속 파초선(부채)’(6월24일 국무회의, 7월15일 5급 신임 사무관 특강)에 빗댔다. 통합 인사 지론에 대해선 “시멘트, 자갈, 모래, 물을 섞어야 콘크리트가 된다”(취임 30일 기자회견)며 콘크리트 제조 공정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외교 무대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한·일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한·미 정상회담) 등 이해하기 쉬운 비유적 표현이 사용됐다.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업무 지시를 하며 “사람 목숨 지키는 특공대라 생각하고 (산업재해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직설 화법의 예다.
이 대통령은 같은 표현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반복해 사용하며 강조하는 특징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5200만 시간의 가치’다. 공직자 한 명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5200만 국민의 삶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공직사회의 책임감을 강조할 때마다 등장했다.
취임 닷새 뒤인 지난 6월9일 2차 비상경제점검 TF 회의에서 “우리가 쓰는 한 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라고 처음 언급했다. 이후 6월23일 첫 수석보좌관회의, 7월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 마무리 발언, 7월11일 ‘대통령과 외식합니다’ 행사, 7월15일 5급 신임 사무관 특강 등 총 5차례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
“특별한 희생엔 특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 역시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집약한 문장으로 각종 기념사와 회의, 간담회에 쓰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를 비롯해 6·25기념사, 부산 타운홀미팅 등 총 7차례에 걸쳐 “특별한 희생, 특별한 보상”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