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농산물·加 전력·유럽 의약품…美 급소만 골라 찔렀다

2025-03-11

취임하자마자 전방위로 관세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의 강력한 맞대응에 직면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며 잇따라 보복 조치를 단행하고 나선 것이다.

1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에 따른 대응으로 중국과 EU·캐나다 모두 미국의 약점을 노린 반격에 나섰다. 중국이 전날 0시를 기해 미국산 밀·옥수수 등 29개 품목에는 15%, 육류·수산물 등 711개 품목에 대해서는 10%씩 관세율을 높이는 보복관세를 시행했는데 이로 인해 해당 품목에 대한 미국의 수출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을 겨냥한 정밀 타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옥수수와 대두·밀 등 미국의 주요 곡물 생산 지역인 아이오와·오하이오·인디애나 등은 공화당 텃밭이자 지난해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지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을 타격해 정치적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미국 농가의 민심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산 비중이 85%인 비료 원료 칼륨에 관세를 부과한 것이 비료 가격을 높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에서 중국의 보복관세로 수출마저 위협받고 있어서다. 지피 듀발 미국농민연맹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3년 연속으로 미국 농부들은 거의 모든 주요 작물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세 문제로 미국과 가장 날 선 공방을 펼치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미국으로 가는 전기를 차단하겠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전날부터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에 25%의 할증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번 조치로 온타리오주와 인접한 미시간·미네소타·뉴욕 등 3개 주의 150만 가구 및 사업체는 하루 40만 캐나다달러(약 4억 원)씩 전기요금을 더 비싸게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됐다. 더그 포드 온타리오 주지사는 성명을 내고 “관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무역 갈등을 고조시킬 경우 할증료를 더 높이거나 아예 전력 공급을 차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미시간·미네소타·뉴욕주가 수입하는 캐나다 전력 비중은 1~4%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양국 간 관세 공방이 에너지 문제로 확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이 자국산 원유에 관세를 10% 부과하자 미국으로 원유 수출을 줄이고 대신 유럽·아시아로 물량을 돌리겠다는 입장이다. 이 역시 석유 공급을 늘려 유가를 낮춰 관세발(發)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을 틀어지게 만들려는 캐나다의 계산된 조치로 읽힌다.

캐나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1단계로 이달 4일부터 300억 캐나다달러(약 30조 2850억 원)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고, 총 1250억 캐나다달러(약 126조 2000억 원) 규모의 2단계 관세(25%)도 대기 상태다.

아직 미국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서지 않은 EU도 미국의 아픈 곳을 찌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EU가 항생제 등 필수 의약품을 트럼프 행정부 관세 공격의 맞대응 수단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유럽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조치가 위협적인 이유는 미국이 항생제, 방사성의약품, 심장박동 조절기 등을 주로 EU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이 EU에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품목이 260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유럽 외교관은 “방사성의약품은 주로 독일에서, 항생제는 이탈리아에서 주로 만들어진다”며 “미국의 이러한 의약품 의존 상황을 무기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U가 인도적 차원의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과 전면전을 치를 채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의약품 무기화 검토는) 미국이 EU에 계속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충격 요법”이라고 짚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달 9일 총 8000억 유로(약 1265조 원) 규모의 ‘재무장 계획’을 확정하며 안보 측면에서는 이미 독자 생존 절차에 돌입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 투입은 미국의 방위비 증액에 따른 조치지만 EU가 국방력 강화를 통한 ‘미국 없는 안보 체제’ 구축으로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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