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변화 속 유럽 그린딜, 산업과 기후정책의 새로운 접점

2024-10-22

그린딜의 정치적 배경, 환경정당의 약진

러-우 전쟁이 초래한 그린딜의 도전

경쟁력과 탈탄소화, 두 마리의 토끼

2019년 말, 유럽연합(EU)은 유럽 그린딜을 발표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국제적 협력과 설득, 그리고 압박을 통해 다른 국가들도 함께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U는 자국의 시장 규모와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국의 규범과 정책을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흔히 '브뤼셀 효과'로 불리는데 EU의 규범이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도록 해 다른 국가들이 EU의 정책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EU는 그린딜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정책과 입법안을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산업활동과 소비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한다는 점이다.

가령 'Fit for 55'로 불리는 탄소감축 입법안은 다양한 제도와 법안을 포함하고 있는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고탄소배출 수입제품에 일종의 탄소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미 전환기간 형식으로 발효됐고 기업들은 대응을 위해 분주하다.

그렇다면 EU는 어떠한 배경에서 그린딜을 추진할까? 유럽은 일찍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했다. 산업혁명에 따른 부작용으로부터 얻은 교훈과 많은 국가들이 밀집한 지역적 특성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그 배경에는 친환경 기준에 민감한 유럽의 여론이 있다.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 계열 정당들은 전체 의석의 10%를 차지하며 큰 지지를 얻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20%의 의석을 확보했다. 당시 EU 집행위원장으로 거론되었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그린딜 공약을 통해 녹색당의 지지를 추가로 확보했다.

그린딜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강도높은 경제재제를 부과했다. 탈러시아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에너지 절감, 수입선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을 세웠다.

전 세계는 공급충격과 함께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크게 의존했던 유럽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경제성장률이 급락했다. 독일 경제는 사실상 2년째 경기침체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유럽에서 그린딜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문제와 고금리로 인한 가계 부담 등으로 민생 불만이 커졌다.

엄격한 환경 규제는 비용을 유발한다는 인식에 따라 그린딜에 대한 지지가 줄었다. 실제로 올해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 계열 정당들은 많은 의석을 잃었다.

특히 독일 녹색당의 득표율은 5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극우성향의 정당들이 세력을 넓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는 강력한 환경 규제가 새롭게 나오기 힘들다. 작년에 가까스로 통과된 '자연복원법'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EU의 그린딜이 폐기되거나 후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린딜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던 폰데라이언 EU 집행위원장이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EU는 여전히 그린딜을 일정에 따라 추진할 것이다. 최근 EU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전(前)총재를 통해 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전히 탈탄소화를 유럽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본 방향으로 삼고있다.

향후 EU의 그린딜은 산업경쟁력 강화와 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의 상계관세 부과를 확정했다.

운송 분야는 탄소배출 감축이 가장 더딘 분야이다. 오히려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가 일시적이나마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EU의 조치는 중국의 정부 보조금이 공정 경쟁을 훼손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의 친환경 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앞으로 EU의 통상 정책은 유럽 산업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국제적 탈탄소화를 추진하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추구할 것이다.

이는 무역과 환경을 연계하는 보편적 방식이지만 때로는 더 세련되게, 또는 더 공격적인 방식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글/ 김유덕 유럽연합(EU) 연구소장(한국외국어대학교 Language & Trade 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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