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들이 시대의 뒤편으로 빠르게 퇴장하고 있다. 영화, 교육, 체육, 산업 등 분야를 막론하고 한때 주류라고 불렸던 흐름이 새로운 흐름에 대체되면서 비중을 잃어가고 있다. 옛 것이 새 것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문명의 흐름을 넘어 자연의 섭리이나 최근에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문명은 고도화 될수록 ‘대체’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랜 인류의 역사 동안 18세기까지 말의 속도를 넘지 못했던 인류가 불과 300년도 채 안된 20세기에 소리의 속도를 추월했듯 현대 문명 속에서 눈 깜짝할 새 일어나는 대세의 대체는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빠른 속도에 매몰돼 사회는 퇴장하는 옛 것들을 헌 것 취급하며 최소한의 존중도 보여주지 않는 듯 하다.
현재 철강산업계에도 퇴장하는 과거의 주인공들이 있다. 문래동, 시흥, 구로 등에 위치한 철재종합상가의 소상공인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과거 60년대 한국의 고도 성장기와 탄생을 함께한 이들은 국내 경제 성장을 견인한 철강산업 유통의 허브로서 수도권의 철강 유통 동력을 공급했다.
전국 어디에서든 철재를 싣고 바삐 움직이는 트럭을 볼 수 있었고, 상가는 물품을 보러 온 전국 각지의 상인들로 가득해 늘 붐볐다.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자연히 단지의 규모도 커졌고 몇백, 많으면 몇천에 달하는 가공, 유통 상인들의 점포가 입점했다.
철재상가들의 전성기는 영원하지 못했다. 21세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며 이전과 대비해 수요가 줄은데다 전자 플랫폼화를 통한 유통이 성행하며, 철재상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과거 수도권 철강유통의 허브라는 영예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회색빛으로 대표되는 낙후 지역들로 인식되며 재개발이 예고돼 있을 뿐이다.
젊은 청춘이 황혼을 맞이하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성기를 잃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다만 과거 산업의 쌀이라 불린 철강을 전국 방방곳곳에 유통시키며 국가 성장을 견인했던 그들에게 현 시대의 흐름은 너무 가혹해 보인다.
철재상가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옛 것을 옛 것이 아닌 헌 것으로서 대우한다면 그 누구도 존중받는 말년을 꿈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한 편의 연극이 끝난 뒤 배우들이 퇴장하는 것은 당연하나 철재상가들에게는 커튼콜 기회마저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