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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HD현대의 셈법이 복잡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선 '러브콜' 이후 대미 투자 확대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현지 투자냐, 협력이냐'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해상수송사령부(MSC) 7함대 소속 군수지원함 1척에 대한 MRO 사업 입찰에 참가한다.
HD현대중공업이 미MRO 사업 입찰에 뛰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최대 3척의 미국 MRO 수주 목표를 세운 만큼 한화오션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상태다.
경쟁사인 한화오션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현지 생산거점인 필리조선소를 기반으로 함정 및 상선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 내 4~5도크에 슬롯을 배정했다.
당초 HD현대의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미국 군함 MRO 사업은 시범사업 형태"라며 "알려진 것에 비해 법적 물량이 많지 않아 한동안 무리한 케파 확장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현지 조선소 지분 투자나 임대 등 다양한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며 미국 본토 투자를 고려하고 있지만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1600조원 규모의 미국 군함 시장이 활짝 열리자 조금씩 기류변화가 감지되는 분위기다. 미국 의회에 해군 함정 건조를 동맹국에 맡기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미국 진출 기회가 커진 영향이다.
만약 법안이 통과될 경우 상당한 규모의 미 해군 함정 신조 시장이 열리게 된다. 미 해군은 지난해 기준 295척인 군함을 2054년 390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에 따른 구매 비용만 1조750억달러(약 1562조원)에 달한다.
본격적인 개화를 앞둔 미국 조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화오션처럼 미국 현지 거점을 마련하냐, 기존 해외 거점을 활용하느냐 등 여러 방안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도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달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가 주최한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는 토론회에서 HD현대의 역할이 집중 조명됐다.
그러자 이 자리에서 HD현대중공업은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하면서 현지 투자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동안 신중했던 미국 투자 기조에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김지훈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책임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조선 산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이며, 장기적으로 미국 내 투자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며 "미국 내 투자가 이뤄질 경우 추가적인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에 해외 투자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현지 투자 가능성을 열어뒀다.
HD현대중공업은 현재로선 향후 법안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긴밀하게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투자 확대 기조로 볼 때 어떤 형태로든 미국 조선소 재건에 기여하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사세 확장과 실리 사이에서 셈법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단순한 시장 확대 기대를 넘어 현지 운영 리스크, 투자 재원 조달에 따른 재무부담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미 조선소를 인수하기 위해선 산업 생태계 복원 비용까지 수천억 원에 이르는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현준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미국은 오랜 기간 조선 인프라가 낙후됐고 인력 전문성, 밸류체인 여건, 규제 수준 등이 국내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생산성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