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탈(脫)원전 공약을 앞세운 대만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 후보는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총통에 취임한 그는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95조 1항을 입법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원전 가동 중단으로 곳곳에서 전력 수급 차질이 빚어졌고 탈원전 정책은 인기를 잃었다. 결국 탈원전을 표방한 차이잉원과 민진당은 2018년 11월 대만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전기사업법 95조 1항도 폐기됐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가 요즘 ‘전기’ 복병을 만나 홍역을 치르는 것도 차이잉원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볼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TSMC가 대만의 급격한 전기요금 상승과 잦은 정전으로 경쟁력에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탈원전 정책 이전에는 양질의 전기를 값싸게 공급받았던 TSMC가 원전 가동 축소와 급격한 전기요금 상승으로 경쟁국들보다 훨씬 비싼 전기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웬델 황 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년에는 대만의 전기요금이 우리가 공장을 운영하는 국가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개탄했다.
대만의 탈원전 정책은 실행 2년여 만에 폐기됐지만 그 후과는 현재진행형이다. 원자력 비중은 1980년대의 50% 수준에서 6%로 떨어졌고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가 에너지 공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비효율적 구조를 낳았다. 결국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은 걸핏하면 전력 예비율이 정부 목표치인 15% 아래로 떨어지고 언제 정전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공장을 돌려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오죽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이 “전력이 점점 더 TSMC의 신용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을까. 우리에게도 문재인 정부 시절 대만처럼 이념에 경도된 탈원전 정책을 강행했던 흑역사가 있다. 지난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제는 반도체 등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전 부활을 통한 ‘에너지 믹스’ 시대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