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의 한 마을. 주택 10여채가 폭격을 맞은 듯 불에 탄 채 방치돼 있었다. 지붕은 엿가락처럼 휘어졌고, 일부 주택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올랐다. 집 마당에 있던 농기계와 트럭은 새카맣게 그을려 뼈대만 남았다.
이 마을은 청송군에서 숨진 3명 중 80대 여성이 희생된 곳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5일 오후 이 마을에서 희생된 80대 여성은 자신의 집 마당에서 숨졌다. 희생자는 그의 남편(88)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확산하더니 25일 오후 6시쯤 이 마을 낮은 산을 넘어 순식간에 주택까지 들이닥쳤다. 주민들은 불과 1시간여 만에 여러 주택으로 불씨가 옮겨붙었다고 했다.
노령층이 대부분인 이 마을 사람들은 대피를 서둘렀다. 당시 희생자의 남편도 다급한 마음에 아내와 함께 인근 초등학교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평소 거동이 힘들었다. 고령인 데다가 10여년 전부터 치매와 당뇨 등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이 부부와 가깝게 지낸 이웃 조순석씨(88)는 “고인은 몸이 좋지 않았고 말랐다. 불이 번질 때 남편이 아내를 두 팔로 안아서 마당까지 나왔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보니 그만 마당에 아내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부부가 인근 초등학교로 옮겨지고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아내만 숨졌다”며 “남편은 손과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리는 등 화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졌다. 부부 사이가 참 좋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조씨는 희생자의 남편이 산불 당시 아내와 함께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내만 희생당하자 안타까움에 울부짖었다고 했다. 기자가 26일 찾은 부부의 집은 폐허가 돼 있었다. 집 마당에 설치된 수도꼭지에서 수돗물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