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불안한 국제 정세까지 겹치면서 농산물 수급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평시에 농산물을 비축했다가 비상시 방출해 수급 불안을 해소하는 비축기지 역할이 중요하지만 낡고 열악한 시설이 많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상기후에 따른 ‘금(金)배추’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정부의 농산물 비축사업이 도마에 올랐다. 이 사업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농산물을 수매·수입해 비축했다가 시장 상황에 따라 방출해 수급과 가격 안정을 도모하는 내용으로, 사업 시행기관은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다.
문제는 aT 소유 비축기지가 노후해 제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aT가 운영하는 비축기지는 모두 14곳인데, 이 가운데 aT가 직접 소유한 비축기지 6곳은 지어진 지가 평균 54.5년이나 됐다.
이런 문제는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배추값 문제를 지적하던 중 “0.5∼1℃에서 최장 75일까지 배추를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일찌감치 개발됐지만 비축기지에서 10℃ 이하 온도 조절이 불가능해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러면서 무슨 비축 정책을 펼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모든 비축기지의 상황이 열악한 건 아니다. 14곳 중 정부가 소유한 8곳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으로 냉장설비를 갖췄다. 냉장보관이 필요한 품목은 대개 정부 비축기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비축 가능한 물량은 7만4000t 정도다. 노후로 성능이 떨어지는 aT 소유 비축기지에선 1만8000t 정도의 물량을 비축할 수 있는데, 온도 조절 필요성이 낮은 쌀·콩 등이 주로 보관된다는 게 aT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비축기지 확충·개선 필요성에는 이의가 없다. aT 관계자는 “기후변화 등 대내외적 요인으로 국제곡물 확보뿐 아니라 국내 생산도 변동성이 커지면서 공공비축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비축기지 여석 부족으로 민간 창고를 활용하는 등 비축 기반은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aT 소유 비축기지를 중장기적으로 매각하고 새로 짓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기민한 대응으로 비축 기반을 늘려가는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쌀 등을 저장하는 ‘국내 엘리베이터’ 현대화를 확대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발표했다. ‘일본농업신문’에 따르면 종전엔 40억엔 규모의 사업까지가 지원 대상이었는데 이를 120억엔 규모로 확대하고 이 가운데 최대 72억엔을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농협(JA)·도매업자·창고업자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최근 2억6000만엔을 들여 나고야에 콩 1000t가량을 보관할 수 있는 저온창고(바닥면적 900㎡)를 구축했다. 이곳은 올해부터 도카이·홋카이도 등에서 생산한 콩을 대량 저장했다가 흉작기에 방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