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납세자 권익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인사공백이 반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독립기관이지만, 예산‧인사권이 업무과 무관한 국무총리실 밑으로 배치되어 상임심판관 임명 요청조차 하기 어렵다. 그 사이 조세심판원과 납세자 부담은 계속 쌓이고 있다. 지금 균열은 앞으로 조세심판원에 더 큰 금을 그을 수 있다.

◇ 주축 빠진 자동차
국무총리실 소속 조세심판원 심판청구는 납세자 권익보호의 최후 보루라고 불린다. 행정심판에서 이기면, 곧바로 국세청 부과가 취소되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심판결정은 총 8개 심판부 심판관들이 맡는다. 1개 심판부 심판관 배치는 상임심판관 1명, 비상임심판관 4명이며, 심판결정 의결 때에는 상임 1명, 비상임 2명 등 총 3명의 심판관이 법원 합의부와 유사한 체제를 구성한다. 심판관은 기능 면에서 법원 판사와 유사하다.
상임심판관과 비상임심판관 모두 대등한 한 표지만, 심판행정의 주축은 상임심판관이다.
비상임심판관은 재능기부 차원에서 짬 내어 심판결정 업무에 참여한다. 그들에게는 법조인‧교수 등 주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상임심판관은 심판업무가 주업이다. 전문자격 2급 고위공무원이 담당하며, 공직자로서 강한 책임성을 부여받는다. 비상임심판관들은 심판부 배당 사건을 나눠 맡지만, 상임심판관은 모든 사건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중요한 축 여덟 개 중 세 개나 공백 상태다.
첫 인사공백은 지난 9월 2일 3심판부 상임심판관이었던 이상길 심판관이 조세심판원장으로 승진하면서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중순께 5상임심판관, 지난 1월 4상임심판관이 개별 사정으로 자리를 떠나면서 공백은 세 자리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상임심판관 부재 시 완충재가 있었다.
부재한 상임심판관(2급) 심판결정 업무를 심판부 선임 심판조사관(3~4급)이 대리하도록 했다. 선임 심판조사관들은 누구나 상임심판관에 준하는 법정 자격을 가졌고, 동시에 누구나 상임심판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5월 감사원은 그 완충재를 제거해버렸다.
상임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대통령 임명도 받지 않은 심판조사관들이 심판관 역할을 맡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른바 절차성 시비를 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심판부 선임 심판조사관들이 대리를 맡을 수 없다. 대신 다섯 명의 상임심판관이 돌아가며 3‧4‧5심판부 사건들을 맡고 있다. 상임심판관 한 명당 업무량이 1.6배 증가한 셈인데, 실제 부담은 더 크다.
공석인 3‧4‧5심판부는 내국세 사건 전문인데, 현직 상임심판관 가운데 내국세 전문은 1‧2심판부 상임심판관뿐이다. 6심판관은 관세 전문, 7‧8심판관은 지방세 전문이다.

업무량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인사공백이 터진 것도 큰 문제다.
조세심판원 사건처리건수는 2017년 8351건, 2018년 1만683건, 2019년 1만1703건에서 2020년 1만5845건으로 급증세였다.
이에 국무총리실은 2020년 2개 심판부와 2개 심판조사관실을 신설하고, 상임심판관 수를 6명에서 8명, 조직 정원도 117명에서 123명으로 늘렸다(2023년 정원은 122명).
이 판단은 시의적절했다. 조세심판원 처리건수는 2021년 1만6588건, 2022년 1만4814건에서 2023년 2만30건으로 높은 수준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상임심판관 한 명당 처리사건 수는 2019년 1442건에서 2021년 1518건, 2023년 2061건으로 되려 늘어났다. 사람을 증원해도 사건이 그만큼 증가했다.
상임심판관 인사가 지연되는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다.
국무총리실은 인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11월~12월 새 상임심판관 임명을 단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임명 직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인사작업이 모두 중단됐다.
총리실 입장은 추후 인사절차에 진행될 것이라는 원칙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조세심판원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근본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말한다.

◇ 셋방살이보다 못한 더부살이
조세심판원은 기능과 운영이 일치하지 않다.
소속은 국무총리실 직속이지만, 기능은 기재부‧행안부에 의존하고, 인사‧조직‧운영만 국무총리실에서 담당이다.
민간회사로 치면 부서는 자동차 A/S정비인데 소속은 생뚱맞게도 그룹 기획실인 꼴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려면, 행정재결이란 용어를 알아야 한다.
행정재결이란, 행정관청이 스스로 자기 실수를 고치는, 일종의 행정 A/S업무를 말한다. 자동차 회사가 차를 팔지만, 고장 난 차를 팔았을 경우 수리해주거나 새 차로 바꿔주는 것과 같다.
행정 A/S절차는 관청이 스스로를 심판하여 수정하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그래서 행정재결(行政裁決)이다. 여기서 ‘재’ 자는 재판할 때의 ‘재’ 자다.
한국은 2008년 이전까지는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A/S센터를 운영하는 식으로 과세행정 A/S센터를 운영했다.
내국세‧관세 행정재결은 기재부가, 지방세 행정재결은 행안부가 주 담당이었데, 기재부는 내국세법‧관세법, 행안부는 지방세법의 제조와 품질관리, 다시 말해 기획과 해석을 담당한다. 세금을 매기는 국세청과 관세청 등도 행정재결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08년 일이 터졌다.
정부는 공무원‧조직 감축을 통해 나갈 돈을 줄여보고자 했다. 그래서 기재부와 행안부의 행정재결 기능을 합치려 했다.
그런데 이 통합 A/S센터를 누구 밑에 둘지가 애매했다. 같은 세금이지만 내국세‧관세와 지방세는 법이 다르다. 기재부와 행안부는 서로 자기 밑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둘 다 사업부장이 사장급(장관급)이었다. 싸움은 팽팽했고, 상관이 정리를 해줘야 했다.
회장님의 결론은 무지막지했다.
‘둘 다 사장이라서 싸움이 안 끝나? 그럼 부회장 밑에 둬’란 식이었다.
엉겁결에 부회장 격인 국무총리와 국무총리실은 내국세‧관세‧지방세 통합 A/S센터를 건네받았다. 그렇게 2008년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이 탄생했다.

국무총리실 입장에선 달갑지 않았는데 말만 국무총리실 산하지, 덤터기가 아닐 수 없었다.
국무총리실 기능은 자동차, 제약, 교육, 문화, 수출 등 무수한 정부 내 사업부 조정업무다. 회사로 치면 그룹 기획실 정도다.
그런데 조세심판원 기능은 기재부‧행안부에 의존해야 한다. 세법 기획‧해석 기능은 기재부‧행안부 고유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세심판원 관련 법 구조도 불일치하다. 행정재결 효력과 기능에 대한 근거법령은 각각 기재부와 행안부 소관인 국세기본법‧지방세기본법에 있는데, 기관 인사‧예산 근거법령만 국무총리실 직제 시행령에 들러붙었다.
국무총리실이 기능 없이 사람 대고 예산 대주는 뒤처리만 받은 셈이다.
혹자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조세심판원 관리‧운영을 한다고 말한다. 국무총리실 관리‧운영은 국무조정실장이 하는데, 국무조정실장은 기재부에서 뽑힌다. 기재부가 내국세‧관세 총괄을 하니 조세심판원 운영방법도 잘 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장은 통상 기재부에서 예산이나 금융 하는 사람이 가지, 세법 기획 쪽 사람이 가지 않는다. 같은 자동차 회사 출신이라도 재무실장이 품질관리실 상황을 알기란 어렵다.
이러한 불일치는 조세심판원을 더부살이보다 못한 셋방살이로 몰아넣는다.
적어도 더부살이는 그 집 일이라도 해주며 거처를 받는다.
반면, 조세심판원은 독립기관이라서 총리실 업무를 하지 않고, 국무총리실 자원은 조세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의 넘어가지 못한다. 총리실 자원이 심판원으로 넘어가려면 변호사나 세무사 등 전문자격‧경력이 있어야 한다. 국무총리실은 득 보는 거 없이 인사 TO만 조세심판원에 내주고 있다. 월세 한 푼 없이 셋방을 내주는 꼴이다.
국무총리실도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이 중요하다는 건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자기 식구 챙기듯 셋방살이 사람들을 위해 뛰기란 쉽지 않다.

◇ 독립성과 책임성
정부도 문제를 모르진 않았다.
정부조직구조상 조세심판원은 원장이 1급 실장급이며, 실장급 조직은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독립적인 인사‧운영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적어도 차관급 기관은 돼야 한다.
2019년 2월 대통령 직속 조세재정개혁특위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단‧중기적으로는 조세부문 행정재결기능을 추가 통합, 장기적으로는 조세법원 설립을 하자는 것이었다.
방법의 지향점은 같았다. 높은 독립성을 주는 대신 책임성도 강화였다. 기능을 통합해 조직 규모를 불려 독립적 운영권한을 주고, 심판관의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재정특위 안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서류 수납함에 잠들었다.
공식적인 이유는 없으나, 세간에선 다음과 같이 추정했다.
‘그 일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 곳도, 추진할 여력이 있는 곳도 없었다. 과세관청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재정특위 안에 따르면, 과세관청은 내부 행정재결 조직을 통째로 조세심판원에 넘겨줘야 한다. 작은 과 하나 만들기도 어려운 데 국 단위 조직을 넘겨주는 건 여간 타격이 아니다’ 등의 이야기다.
답답한 건 총리실만이 아니었다. A/S센터 직원들인 조세심판원 구성원들과 A/S센터 이용자들인 정부와 납세자들도 답답함을 삼켜야 했다.
A/S센터에 비유하긴 했지만, 조세심판원 구성원들은 연구원에 준하는 조세법 전문가들이다.

정원 122명 중 간부급 인재가 전체 75% 이상이다. 3‧4급 과장급 심판조사관이 18명(상무~상무보), 4‧5급이 65명(상무보~부장)이나 된다. 정원의 약 40%가 변호사‧회계사‧세무사‧관세사 등 전문 자격을 갖고 있다(2023년 기준, 출처: 2023 조세심판 통계연보).
주무관들도 학술‧학회‧전문도서 저술 이력이 있는 인원들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미래는 어둡다. A/S센터 직원들 인사운영권을 A/S와 무관한 부서에 의존해야 한다. 공무원은 승진 외 보상이 없는데, 현실은 국무총리실에 있고, 국무조정실장은 기재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의 의견을 받아 국무총리에게 상임심판관(2급 고위공무원) 후보를 제안하고 있다. 상임심판관들은 기재부, 행안부 출신들이 임명된다. 1급 실장인 조세심판원장이 기재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매우 어렵다. 상임심판관 장기 인사공백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심판원 자원들도 사람인데 승진 없이 일만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아직은 조세심판원 역사가 짧아 상임심판관 후보 수준까지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극소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곧 20년 경력자들이 나온다. 지금 인사운영 구조로는 국무조정실장의 이해만을 기대해야 한다.
정부와 납세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상임심판관이 없다고 해서 심판부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심판부 상임심판관이 사건을 처리해줘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시간이 더 걸리고, 실수도 나올 수 있다. 정부‧납세자 입장에선 모두 귀하디귀한 돈이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만일 법원에서 법관이 부족해 판사들끼리 사건을 돌려 맡아 처리한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지금, 그리고 과거 조세심판원에서 벌어진 일은 납세자와 정부 모두에게 득 될 것이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조세심판원에 책임성과 독립성을 같이 부여하는 방안이 제시되지만, 조세심판원에 인사운영권을 부여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란 이유에서다. 심판결정 중에는 공정성이 의심되는 결정도 많았고, 민간과 강한 유착이 의심되는 상임‧비상임심판관들이 몇 거론된다.
다른 의견도 있다. 책임성과 독립성은 불가분이란 이유에서다.
B씨는 “강한 책임성을 부여하려면 강한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 법관이 신분상 보장을 받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거꾸로 애매한 독립성이 주어지면, 애매한 책임성 이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조세심판원은 행정조직이라서 법관처럼 신분 보장을 못 하지만, 심판관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대신 독자적 운영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심판관의 책임성 강화는 신분상‧활동상 제약이나 업무감사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사람 일이 합리성만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 이해관계가 끼기 때문이다.
2008년 조세심판원 설립 명분은 독립성‧전문성이었다. 가재는 게 편을 들 수 있으니 제3자 밑에 두자는 설명은 그럴싸했다.
그러나 행정재결이란 말 자체가 ‘자기’수정을 뜻한다는 점에서 국무총리실과 조세심판원은 첫 만남부터 동상이몽이었다.
합리성을 강조해도 기능과 운영이 동떨어진 조직은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임심판관 인사공백, 희망없는 조직, 불안한 행정심판 등 우려는 계속된다.
조세심판원 인사운영은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다. 이 돈을 처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문제이다.
조세심판원은 작은 조직이지만, 매년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돈이 오간다. 여기에 달린 돈과 사람들은 무겁다. 그 무게에 걸맞은 독립성‧책임성의 무게도 함께 고민할 때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