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

2025-04-20

‘6년 전 찍은 8장의 사진이 도착했어요.’ 묻어둔 적 없는 타임캡슐이 네이버 알림을 통해 불현듯 찾아왔다. 클라우드(인터넷 저장공간)에 차곡차곡 쌓아둔 과거 사진들을 AI(인공지능)가 테마별로 묶어 하나의 추억 영상으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눈길을 끌었던 테마는 ‘음식과 나’. 음식 앞에서 시종일관 행복한 표정의 모습들을 보니 다음과 같은 의식의 흐름이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밝았던가. 이 초밥 진짜 맛있었는데! 맞다, 이 옷도 있었지.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다…. 잊고 지냈던 세세한 순간들을 AI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날 AI의 소양이자 덕목이기도 하다.

개인화를 넘어선 초개인화 시대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지난해 “AI는 가치관 등을 고려한 개인화의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세계경제포럼)고 말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난 10일 대폭 향상된 메모리 기능을 내놨다. 직접 지시하거나 반복해서 언급하지 않아도 AI가 사용자의 세부 정보와 선호를 파악해 맞춤 답변을 내놓는다. 과거 대화를 빠짐없이 기억하는 명석한 메모리를 챗GPT에 탑재하면서 올트먼 CEO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를 점점 더 잘 아는 개인화된 AI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업가인 그가 초개인화를 지향하는 건 기본적으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화와 AI 수익의 연결고리는 지브리 열풍에서도 검증됐다. 챗GPT 이미지 모델이 그려준 지브리 화풍 이미지가 최근 온라인을 도배했다. 제3자가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개인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들이다. 사랑하는 가족들, 즐거웠던 여행지 등 나만 아는 스토리가 덧입혀진 AI 이미지는 추억이라는 개인화의 중추신경을 건드렸다. 올 1분기 말 챗GPT 유료 구독자 수는 이전 분기보다 30% 늘었는데 개인화 공략에 성공한 이미지 모델의 공이 컸다. 이미지 모델 출시 2주 만에 똑똑한 메모리 기능을 가져온 건 초개인화 방향성을 굳혔음을 보여준다.

내 가치관·경험·선호를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AI는 편하다. 다만 맞춰주는 AI에 익숙해지면 내 맘대로 안 되는 현실 세계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증상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알고리즘 기반 뉴스·콘텐트 추천이 만든 확증편향(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지적 편향)이 대표적이다. 굳어질 대로 굳어진 신념은 부딪히면 파국이라, 이에 경찰은 대통령 탄핵심판일에 헌법재판소 주변에 ‘진공 상태’ 구역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상반된 생각들이 교류는 물론 공존도 할 수 없어, 빈 공간을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하는 벼랑 끝 사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인터넷의 주요 가치였던 연결성·공론성이 시들어가면서 인간은 시야가 넓어질 기회를 박탈당하는 중이다. 초개인화 시대의 부작용은 AI 사용 전 필수 숙지 사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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