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정보 진실성은?…가장자리 ‘필름 번호’뿐
순기능 많지만 역기능 만만찮아
모순 대응 땐 적절하게 처리 못해
속도 빨라져도 질적 성장은 늦어
진위 여부 가리는 건 소비자 몫
창작자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 뿐
인류의 기록문화 허구성 꼬집어
챗(Chat)GPT는 Open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로,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 모델은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처럼 자연스럽고 유창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질문에 답하기, 창의적 글쓰기, 문제 해결, 언어 번역, 프로그래밍 코드 작성 등의 기능을 탑재해 다방면에서 활용이 가능해 인류의 또 하나의 혁신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다.
챗 GPT는 △지식 접근성을 향상 △업무의 효율성 증대 △소통과 협력을 강화 등의 순기능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탑재하고 있지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오해와 갈등을 조장하는 정보의 왜곡과 확산 △사회에 내재된 편견을 반영하고 그로 인해 특정 그룹에 대해 차별하거나 불공정한 응답 △ 일자리 감소와 경제적 격차 심화, 인간관계 위축 등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윤선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한창인 박인성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심화하는 주제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는 챗 GPT다. 작업은 챗 GPT에게 질문을 주고, 그 질문에 해당하는 정보나 이미지를 제공받고, 그 이미지에 작가의 창작 행위를 부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가 이번 전시작들을 통해 표명하려는 의도는 챗 GPT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유용한 파트너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AI 기반 기술들이 얼마만큼 현실을 반영하고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맞춰진다. 그가 자신의 의도를 챗 GPT와 ‘상사화’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아 완성한 작품 ‘Conecpetual Plant(개념화(花))’를 기반으로 설명했다. 그는 “‘상사화에 대한 정보를 줘’라는 문장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는 문장을 정확하게 제기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오타를 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상사화를 상시화라고 입력한 것. 이럴 경우 챗 GPT는 상사화와 다른 결과를 전송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챗 GPT가 노정하고 있는 허상이라고 믿었다. 인간이 모순으로 대응했을 때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챗 GPT가 학습하는 정보가 어떤 것이며, 어느 수준의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느냐에 따라 제시하는 정보의 진실성이나 깊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가는 챗 GPT의 모순을 인간세계의 만연한 사회적인 모순과 연결 짓는다. 예컨대 상사화의 경우 동양에서는 꽃이 지면 잎이 피어나는 특징을 보고 “평생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상황”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했다면, 독일에서는 꽃이 일찍 피고 진다는 시간성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챗 GPT에겐 명령을 내리는 행위만 중요하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졌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인간사회의 현상이 어떤 정보를 가졌고, 어떻게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포장지 즉, 제공하는 정보가 달라지는 챗 GPT와 닮아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 ‘Today Between two Worlds(오늘의 사이)’에선 챗 GPT의 허구성이 더 명확해진다. 경북 포항에서 어린이 유괴 사건을 다룬 뉴스를 보고 그 부근의 주소를 챗 GPT에게 제공했고, 챗 GPT로부터 포항 바다 풍경의 이미지를 받았다. 포항이라는 유사성만 처리됐고, 실제 유괴 사건 현장과 어떤 맥락적인 연결성이 없는 이미지였다.
시각적인 표현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박인성의 미술적인 담론은 우리 사회가 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맞춰진다.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유통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있지만 진실성 측면에선 질적인 성장을 따라가지 못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보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은 정보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졌다”고 이해한다.
그가 ‘정보’를 미술의 주제로 삼은 것은 독일 유학 생활 중의 경험 때문이었다.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아날로그 영화 필름을 구입하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정보가 어떻게 왜곡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구입 당시에는 필름의 아날로그 특유의 물성에 매료되었지만,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으로 파고들면서 나치정권 선전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나치정권 선전용으로 만든 거짓 영화가 기록 영화로 탈바꿈한 것이 모순으로 다가왔다.
작업은 필름 재편집을 통해 다큐멘터리 필름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나치의 정치선전영화의 필름 릴에서 필름을 빼내 한 컷씩 자른 후 촬영 당시의 시간이나 장소를 추측하고 그 기준으로 재편집 했어요. 영화를 촬영한 행위만 진실이었고,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기 때문에 거짓을 해체하고 행위에 초점을 맞춰 재편집했죠.”
이후 ‘Behind the Veil’ 연작과 ‘Film’ 연작으로 확장됐다. 동시대의 중점적 논의와 관련한 이미지의 일부를 촬영하거나 디지털 컬러차트에서 규격화된 디지털 색상번호를 지정해 색면(Color Field)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아날로그 카메라로 촬영하고 현상한 작업들이다. 현상 후엔 필름을 다시 스캔해서 프린트로 출력하고, 합성수지나 바니시 또는 물감으로 이미지 지향적인 회화(繪畵)를 더한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촬영된 이미지가 아닌 필름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필름 번호다. “AI나 창작자가 개입할 수 없는 스스로 작동하는 영역만 진실이라고 생각했어요. 필름 번호였죠. 그 부분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자기 객관화하고 싶었습니다.”
정보의 허구성에 대한 비판은 역사에 대한 기록인 ‘박제된 순간들(Stuffed Moments)’ 연작으로도 드러났다. 이 연작에선 과거 어느 시점에 중요했던 기록된 역사와 역사 속 현대의 해석을 겹치며 ‘인류의 기록문화의 허구성’을 꼬집었다. ‘박제된 순간들’에선 설치 작품도 구현했다. 황룡사에 사용된 기둥(주심포 양식)을 모티브로 한 입체(3d) 작업으로 확장됐다. 정보를 덩어리화(formatting) 하고 그 물성에서 진실의 양식(form)을 발견하려 했다.
“‘우리가 기록한 역사가 과연 누구의 역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작품 ‘필름(film)’ 연작은 미국 뉴저지 소재의 색상 전문 연구·개발 기업인 팬톤(Pantone LLC.)이 해마다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에서 영감을 받았다. 팬톤이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가 정치·경제적인 권력의 결과라고 보고 작업 과정에서 칼라를 허문다. 색채의 권력화에 대한 비판이다.
이번 전시작들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시리즈 작업에서 벗어나 작품마다 고유한 제목으로 독립적인 접근을 한다는 점이다. 정보의 허구성이라는 주제는 견지하면서 작업 방식이나 소재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현대사회에서 정보와 관련된 이슈는 차고 넘치는 그 모든 이슈들이 작업의 대상이 된다. 작업 방식 또한 이슈에 따라 변화를 허용한다. 여기에 짙은 추상성에 기댔던 이전 작업과 달리 AI로 생성된 이미지가 가지는 형상성도 어느 정도 수용된다. 이는 그의 작업이 물성과 개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점 위에 있음을 대변한다. 전시는 12월 15일까지 윤선갤러리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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