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국가 R&D 한다고?…인건비 누수 감시는 ‘깜깜’

2024-10-16

‘가족 연구자’ 인건비·수당 지출 총 25억원

실제 연구 기여했는지 사실상 확인 불가

연구 관리 시스템 절차·규정 강화 필요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겠다면서 배우자와 자녀, 형제·자매 등 자신의 가족을 연구팀원으로 삼은 ‘연구 책임자’가 지난 4년간 100명에 육박하며, 이런 가족 연구자들에게 나랏돈으로 지급된 인건비와 수당이 25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책임자의 배우자 한 사람이 3년간 1억3000만원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현 제도에서는 연구자 가족이 실제로 연구에 기여하고 인건비와 수당을 받았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일부 교수들이 자녀를 자신의 연구팀 논문 공저자로 끼워넣어 이른바 ‘스펙 쌓기’를 도왔던 일이 드러난 2017년 이후에도 연구 관리 제도 개선에 뚜렷한 진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연구재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가 R&D의 일환인 개인 기초연구 과제에 자신의 가족을 연구자로 삼겠다고 신고한 연구 책임자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총 96명이었다.

연구 책임자는 연구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대학의 경우 교수가 많다. 연구자로 등록된 가족으로는 배우자(87명)가 가장 많았고, 자녀(5명)와 형제·자매(4명)가 뒤를 이었다.

가족 연구자에게 지급된 인건비와 수당은 모두 25억5613만원이었다. 전체 가족 연구자 96명 가운데 3분의 2(64명)가 받았다. 이들은 대개 3~5년 동안 연구를 수행한다고 했는데, 1인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받았다.

1억원 이상을 받는 가족 연구자도 4명이나 있었다. 생물학 연구를 하는 A연구 책임자의 배우자는 2022년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총 1억3000만원을 받는다고 신고했다. 3년 동안 매년 4000만원 이상을 받는 셈이다.

문제는 가족 연구자들이 정말 연구를 하고 대가를 받는 것인지 검증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과학 연구를 관리하기 위한 법률인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는 가족 등 연구 책임자의 이해관계자가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일에 대해 통제하는 규정이 따로 없다.

현재는 일종의 행정기관 업무 규약 성격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사업 협약서’ 내 관련 조항에 따라 가족 연구자가 관리된다. 관련 조항 적용은 2021년 시작됐다. 2017년 이후 일부 교수들이 자신의 자녀를 논문 공저자에 올려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를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온 대책이다.

협약서에 따라 연구 책임자는 “우리 가족을 연구자로 삼아 일해도 될까요”라고 대학 등 주관연구기관의 수장에게 문서로 묻고, 심사와 검토를 받는다.

연구재단은 심사 절차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재단 관계자는 “주관연구기관의 심사가 제도에 맞게 적절히 진행됐는지만 확인한다”고 말했다. 가족 연구자가 적절한 실력을 갖췄는지를 따질 공공기관 주도 시스템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이 모든 절차도 연구 책임자의 ‘자진 신고’에 의존한다. 연구 책임자가 가족을 연구자에 넣을 때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다면 주관연구기관에서는 알 도리가 없는 셈이다.

황 의원은 “가족과 함께 국가 R&D를 수행하고, 연구비를 받아간 경우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연구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인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와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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