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으로 버티는 현대인들…잘 처방받고 있습니까

2025-11-20

중독을 파는 의사들

애나 렘키 지음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 옮김

오월의 봄 | 332쪽 | 2만2000원

의도하지 않은 약물중독 만연한 사회…한국도 마약 등 우려 커

미 스탠퍼드대 정신의학 교수인 저자 ‘과잉 처방’ 위험성 경고

버스 안에 앉은 두 여성이 그날의 할 일에 대해 얘기한다. 피로를 풀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지 응급실에 가서 약물을 맞을지 고민한다. 두 사람은 후자를 선택한다. “응급실로 가자.” <중독을 파는 의사들>에 등장하는 이 일화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잉 경쟁 시대, 업무와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약에 의지한다. 바야흐로 약물을 에스프레소 주문하듯이 가볍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중독이 된다. 책은 합법적으로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물이 환자를 중독의 덫에 빠지게 한다면 이것을 ‘치료’라고 부를 수 있는가 묻는다. 저자는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중독의학과 교수인 애나 렘키다. 현대인의 중독 현상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 <도파미네이션>(2022)과 <도파민 디톡스>(2024)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이번에 번역된 <중독을 파는 의사들>은 현지에서는 2016년 출간된 것으로 그의 첫 저서다.

미국은 이미 2010년 역사상 처음으로 ‘비의도적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추월했다.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진통제 과복용으로 사망한 인구는 1999년 약 4000명에서 2013년 1만6235명으로 4배 증가했다. 오피오이드는 아편유사제로 강력한 진통, 진정 효과를 낸다. 초기 암성 통증 치료에 쓰였으나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비암성 통증 치료에까지 처방이 확대되면서 이른바 ‘오피오이드 위기’라는 사회적 재난을 초래했다.

문제는 이 같은 “중독성 처방 약물을 오남용하는 환자들 대부분은 마약상을 통해 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약물을 처방”받았다는 데 있다. 책에 따르면 오피오이드 대유행은 퍼듀 파마 같은 대형 제약회사의 판매 홍보와 이들 제약 회사의 로비에 포섭된 의사들의 과잉 처방으로 시작됐다.

의약품을 관리 규제해야 할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오피오이드 신제품에 대한 승인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2011년 11월1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독성 처방약물의 대유행’을 선언했는데, 대유행의 원인으로 “의사들에 의해 널리 처방되고 있는 오피오이드 진통제와 일부 정신과 약물”을 꼽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마약을 비롯한 약물 중독이 사회적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책은 애더럴, 자낙스, 딜라우디드 등 중독의 위험이 있는 약품에 대해서 미리 설명하고 들어간다. 낯설어 보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한국 사회에도 깊숙이 자리한 것들이다.

각성과 집중 효과가 있는 애더럴은 흔히 ‘공부 약’으로도 불린다. 미국에서는 합법이나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그렇다 보니 불법으로 애더럴을 국내에 들여오다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애더럴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없냐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불안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는 자낙스는 한국에서도 처방이 가능하지만, 대리처방 등을 통한 오남용 문제로 종종 뉴스에 보도된다.

상황이 이쯤 되면 비난의 화살이 과잉 처방을 하는 의사들에게로만 향할 수 있으나 책은 이를 경계한다. “의사들은 점점 더 복잡한 생물심리사회적 문제(유전, 양육 환경, 주변 환경)를 겪는 사람들을 치료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지만, 정작 이 과제를 수행할 도구, 시간, 또는 자원은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 혹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에게 의사의 상담과 약물 처방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다.

저자는 “의료시스템이 빈곤, 실업, 고립, 가족 간의 불화 등을 해결하기에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이를 더 잘 수해할 수 있는 약물 너머의 사회복지서비를 구축하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번역은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 모임에 속한 장창현, 기승국 등 열한 명의 의사들이 함께했다. 책의 상당 부분에 주석처럼 옮긴이의 말이 달려 있는데, 미국과는 다른 국내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이해가 쉽다. 옮긴이들은 “지난해 (국내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한 번 이상 처방받은 사람은 2001만명”이었다는 것을 소개하며 이를 “우리 사회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책이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를 비판하는 칼이 아닌 ‘성찰의 거울’로 읽히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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