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생명시스템의 상호작용 …인간의 삶 풍요롭게 만들어야” [차 한잔 나누며]

2025-03-16

‘시스템생물학’ 선구자 노블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디지스트 의생명학 1호 석좌교수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소통 능력”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인간과 서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며, 인간이 AI를 활용해 더욱 풍부한 삶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스템 생물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데니스 노블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심혈관 생리학)는 AI 발전과 인간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노블 교수는 AI는 고사하고 ‘컴퓨터’란 말도 생소했던 1960년대 ‘가상 심장’을 구현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심장의 작동 원리를 수학적으로 규명해 컴퓨터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는 심장 질환 연구와 치료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실 훈장도 받기도 했다.

노블 교수는 2025학년도 1학기부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의생명공학 전공 제1호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돼 학부·대학원생 교육과 연구 지도에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디지스트 초빙 석좌교수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AI 기술의 발전은 미래 교육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컴퓨터나 영상기기가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며 “AI 시대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이해’이며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블 교수가 오늘날 AI 기반 생명공학과 의학 분야의 토대를 놓은 학문은 바로 시스템 생물학이다. 생물 시스템을 분자 수준이 아닌 시스템 수준에서 연구하는 생물학 분야로, 구성 물질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시스템의 전체 기능과 행동에 관한 연구가 주된 목적이다.

그는 ‘유전자(DNA)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에 반박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과학계의 이런 분자생물학 연구는 유전자나 단백질 등 작은 생물의 구성 요소를 규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노블 교수는 “20세기 진화생물학자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하는 것은 유전자’라며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유전자는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 뿐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은 유전자와 세포, 조직, 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명 시스템으로 유전자가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자아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면서 “이런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내리는 선택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고 했다.

노블 교수는 한국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2006년 ‘생명의 음악’이란 책을 내면서 불교 사상과 자신의 시스템 생물학에서 유사점을 발견하면서 불교 철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021년 생명과 삶에 대한 오래된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해 떠난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의 사찰들이었다. 손에 트렁크 하나 끌고 서울 봉은사를 시작으로 남원 실상사, 해남 미황사, 양산 통도사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여러 사찰을 다니며 고승인 성파, 도법, 정관, 금강 스님과 나눈 대화를 가다듬어 ‘오래된 질문’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생명이 유전자나 두뇌처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단백질·세포·장기 등 여러 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며 “불교에서도 모든 것이 이어져 있고 변하지 않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 사상이 시스템 생물학과 굉장히 유사했다”고 설명했다.

구부정한 어깨, 연륜만큼 주름으로 깊게 팬 얼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헝클어진 백발은 육체의 쇠잔함을 느끼게 했지만, 앞으로 학생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이어갈 계획을 얘기할 때는 여느 젊은이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지난달 24일 ‘유전자는 생명체의 청사진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첫 강연에서 그는 “한국 학생들의 깊이 있는 질문과 진지한 태도, 지식을 향한 갈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블 교수는 학생들과의 향후 연구 목표도 제시했다. 그는 “앞으로 학생들과 생명의 신비를 푸는 새로운 탐구를 통해 20세기 생물학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글·사진 김덕용 기자 kim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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