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조작, 삼성 비자금’과 함께한 사제단 50년···“민주화 요구 짓다만 밥 돼”

2024-09-23

1974년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구속되자 전국의 사제들300여명이 들고 일어나 ‘제1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의 태동이다.

50년이 지난 후 사제단은 ‘제1시국 선언’ 속 요구사항을 다시 들고 나섰다. “우리가 제1시국 선언문에서 천명했던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국민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서민대중을 위한 경제정책 확립’은 지금 짓다만 밥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돼 버렸습니다. 다시 한 번 민주의 이름으로 크게 일어설 때가 왔습니다.”

사제단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굵직한 흐름과 함께 해왔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서다 많은 사제들이 옥고를 치렀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조작을 폭로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70~80년대에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운동, 80년대 말에는 통일운동에 함께 해왔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하면서 삼성 비자금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촉발하기도 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사제단이 23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념미사를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제단은 성명에서 “밤낮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일로매진하는 검찰독재의 등장은 민주화 이후 우리가 무엇을 고쳐서 무엇을 창조해나갈 것인지, 그리하여 어떤 나라를 이룩할 것인지 그 목표와 의지가 흐릿해지면서 벌어진 변칙 사태”라며 “당장은 악이 승리하는 듯 보여도 오래 가지 못한다. 악인들은 풀과 같고 의인들은 나무와 같다. 불의의 기세에 놀라지도 눌리지도 말자”고 밝혔다.

이날 미사에선 ‘길바닥 신부’로 불리는 문규현 신부가 주례를, 민주화운동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가 강론을 맡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의 진실을 알렸던 ‘민주교도관’ 안유, 전병용씨에게 감사패도 증정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이용훈 주교의 축복메시지와 박노해 시인의 축시가 낭독됐다.

지난달 19~23일 사제단 소속 42명의 사제들이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순례했다. 사제단은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북녘의 산하를 눈으로 어루만지면서 생나무 절반이 찢겨나간 이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며 “지나온 오십년을 돌아보고 나아갈 오십년을 내다본다”고 밝혔다. 이어 “너도 나도 하나에서 나온 ‘한생명’이니 살림도 ‘한살림’이어야 한다. 저만 알아 저만 살려는 각자위심, 각자도생은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미래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이의 불신과 미움을 포용과 이해로 바꾸자”고 말했다.

오는 11월18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창립50주년 심포지움을 여는 등 기념행사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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