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웅구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4년새 5배 늘어 12만명… 매년 급증세
아동기 때 기능저하 계속 이어져 발병
과거보다 진단 범주 늘어난 것도 원인
대표증상 없고 질환 다양… 신중 진단 필요
‘공부 잘하는 약’ 인식… 과잉 처방도 심각
무기력·수면 장애 등 부작용 커 주의를
오랫동안 소아청소년 질환으로 여겨졌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최근 몇 년 새 성인까지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성인 ADHD 환자 수는 12만명을 넘기며 역대 최다 인원을 기록했다. 2020년과 비교해 4년 만에 5배(약 385%) 가까이 급증한 규모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1만명 이상이 ADHD 치료를 받으면서 이미 지난해 환자 수의 90%를 넘어섰다. ‘유행’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게 들릴 만큼 가파른 곡선이다. 실제 연예인과 유튜버들은 잇따라 성인 ADHD 진단 사실을 공개하고 있고, 온라인에는 자가진단 문항이 넘쳐난다.
ADHD 환자의 폭증은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서일까, 아니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쇼트폼(짧은 영상) 같은 고자극 콘텐츠로 현대인들의 집중력이 저하됐기 때문일까. 성인 ADHD를 진료하는 강웅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2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아닌 이상, 병에 걸리는 사람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는 없다”며 “성인 ADHD는 아동기 때부터 이어져 온 기능 저하가 핵심이며,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강 교수는 콘서타 등 마약류로 분류된 ADHD 치료제가 마치 ‘집중력 보조제’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사 증세나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모두 ADHD로 여기는 과도한 진단과 약물 오남용의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병명과 달리 주의력 저하가 나타나지 않는 환자도 있을 정도로 ADHD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이적 증상이 없는 데다 다양한 양상이 복합적으로 발현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사람들 간에도 증상의 정도와 약물 반응은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강 교수와의 일문일답.
―ADHD는 우울증, 조증, 불안증 등 질환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ADHD는 특이도가 높은 증상이 없는 데다 대부분 우울증 등 공존질환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렇다 보니 어떠한 증상도 나타날 수 있는 병입니다. ADHD인데도 주의력과 관계없는 경우도 많고, ADHD가 아닌데도 주의력이 떨어지거나 능력치가 떨어져 구별이 어렵기도 합니다. 다만 성인 ADHD는 아동기에 발생한 ADHD가 자연스럽게 정상화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으로, 병원에 와서 ‘전에는 안 그랬는데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환자들 다수는 주의력 문제가 아니라 우울증 등의 문제입니다.”
―성인 ADHD의 진단 과정이 궁금합니다.
“주의력은 혈압처럼 연속 분포를 이룹니다. 어느 지점을 기준선으로 삼느냐에 따라 환자 범위와 수가 달라집니다. 지금은 과거엔 정상 범주로 여겼던 사람들까지 포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ADHD는 뇌영상이나 혈액검사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흔히 진행하는 자가설문도 스스로 ADHD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면 100% ADHD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수십 개 항목이 있는 주의력 검사에선 정상인도 일부 비정상이 나올 수 있어 이 같은 검사 결과를 진단으로 곧장 연결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임상 증상과 병력을 청취한 뒤에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직관적으로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ADHD의 치료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약물치료입니다. 다만 ADHD 치료제로 알려진 콘서타 등은 주의력 문제에만 효과가 있어 약물의 실제 효과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예컨대 반사회적 기질을 가진 아동도 ADHD로 진단되는데 이런 기질은 성장한다고 바뀌지 않으며, ADHD 치료제로 해결되지 않아 다른 방법으로 다뤄져야 합니다. 비약물 치료 역시 모든 ADHD에 통하는 행동치료는 없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생활습관과 스케줄을 규칙적으로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ADHD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 ‘집중력 약’이라며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ADHD 팬데믹’은 경쟁에 내몰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학생들이 사회로 나간 뒤에도 이 같은 경쟁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종의 도핑입니다. 실제 중추신경계 자극제인 ADHD 치료제는 스포츠계에서 도핑 금지약물 1호에 속합니다. 복용자는 ‘정신이 맑아졌다는 느낌’에 자신의 능력치와 성과가 좋아졌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약물을 사용하다 중단하면 반작용으로 무기력과 졸음, 수면장애에 시달리면서 ADHD가 재발했다고 오인해 다시 약을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제게 오는 환자 중 약물을 실제로 처방하는 경우는 열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정상 범위에 속하는 분들이지만 일부는 처방을 해달라며 항의하는 사람도 있고, 약물을 원하는 대로 처방해주는 다른 의사에게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의학의 문제가 아닌 철학의 문제가 될 수 있지만 ADHD 치료제의 한계와 위험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ADHD가 아닌 사람이 치료제를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있을까요.
“일부 환자들에게 ADHD 치료제는 큰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조현병 전구증상으로 주의력이 떨어진 사람을 ADHD라 오진하고 약물을 투여하면 조현병 발병이 촉진될 수 있습니다. 이는 약물을 중단하면 다시 회복되는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라 만성적 질환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입니다. 또 콘서타는 필로폰과 작용기전이 유사해 중독 등 남용 가능성이 높고 수면장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요.
“정부가 첫 처방 전 객관적 확인, 1회 처방 기간 제한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남용 억제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진짜 환자의 치료 접근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ADHD 팬데믹’ 양상을 조절하는 긴급 조치인 건 맞지만, 실제 실효성은 지켜봐야 합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