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목적의 부당 합병’ 등 2심에서도 무죄
반도체 경쟁력 회복,‘관세 폭탄’ 극복 등 난제 산적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한 ‘부당 합병, 회계 부정’ 의혹 사건으로 4년5개월간 재판을 받아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어제 항소심 재판에서도 자본시장법 등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상고할 경우 최종 무죄 여부는 대법원에서 판가름나지만,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항소심 단계에서 끝나는 만큼 이번 판결로 이 회장과 삼성그룹의 ‘사법 리스크’는 일단락 수순을 밟게 됐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과정에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석 달 뒤 이 회장을 기소했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에 대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회계처리 위법 위주로 공소장을 변경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함께 기소된 삼성그룹 핵심 관계자 13명에게도 원심과 같은 무죄가 선고됐다.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피고인들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지금 삼성이 직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수사(1년9개월)와 재판(4년5개월)을 비롯해 국정농단 수사까지 ‘사법 리스크’로 인한 8년여의 리더십 차질은 삼성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현상 유지에 집중하며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중단하는 등 과감한 투자에 나서지 못한 탓에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등에서도 경쟁업체에 뒤처지며 주가가 하락하는 등 ‘삼성 위기론’이 커져 왔다.
대외 환경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충격을 비롯해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글로벌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도 당면한 리스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반도체와 철강 등에도 부문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며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만큼 삼성은 AI 경쟁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래 신사업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도록 준법 경영에도 매진할 필요가 있다. 초격차 유지를 위한 기술 개발과 연구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도 반도체특별법 처리에 속도를 내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완화하고 무리한 수사를 자제하는 등 기업이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치열한 첨단 기술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삼성이 기업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국가와 사회에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