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다섯 살 조카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검색하던 이지현씨(30)는 성인 상품 못지않은 키즈 화장품 세트 구성에 깜짝 놀랐다. 향수, 립스틱, 매니큐어, 선쿠션, 마스크팩, 세럼, 클렌징폼으로 구성된 세트가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으로 포장돼 판매되고 있었다. 이씨는 “조금 과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해 성분이 없는 순한 제품이라고 해서 구매했다”며 “공주놀이를 좋아하는 조카가 직접 바를 수 있는 화장품으로 놀이를 하니까 더 재미있어 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시장의 타깃층이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최근까지 뷰티 업계의 ‘막내 고객’은 10대 초반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어린 유아·미취학 아동이 ‘다음 손님’으로 부상 중이다.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과 순한 성분 등을 내세운 유아용 스킨케어 제품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낮아지는 화장품 입문 시기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어린이가 놀이하듯 화장품을 접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누구나 한번쯤 엄마의 화장대에서 립스틱을 장난감처럼 사용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놀이 정도로 여겨지던 흐름이 점차 ‘피부관리’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마트 장난감 진열대에 있던 장난감 화장품 세트는 이제 성분 테스트를 거쳐 뷰티 코너의 카테고리로 진입했다.
경영컨설팅회사 루센트는 국내 유아동 화장품 시장 규모를 약 1조원으로 추산했다. 저출생 시대, 적게 낳지만 아낌없이 투자하는 ‘프리미엄’ 육아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컬리에서는 해외 유명 약국 브랜드가 베이비·유아 화장품을 출시하자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컬리 관계자는 “유아동 상품은 프리미엄 제품들의 반응이 좋다”며 “안전하고 검증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어린이용 대용량 제품을 사서 온 가족이 사용하는 예도 많다”고 말했다. 바이오더마, 아토팜, 일리윤 등 저자극 스킨케어 브랜드들도 키즈 라인과 가족용 대용량 라인을 동시에 내놓으며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해외에서도 화장품 시장 타깃층은 어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닐슨IQ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 가정에서 7~12세 자녀를 위해 지출한 스킨케어 비용은 약 25억달러(약 3조6820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뷰티 인플루언서 따라 하기’ 현상이 있다. 미국에서는 8~12세 어린이들이 세포라 같은 화장품 매장을 직접 찾아 제품을 사는 모습을 일컫는 ‘세포라 키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흐름을 겨냥한 제품과 마케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캐나다 배우 셰이 미첼이 선보인 키즈 스킨케어 브랜드 ‘리니’는 4~5세 어린이가 동물 모양으로 포장된 비타민 마스크팩으로 ‘피부관리’를 하는 광고를 SNS에 선보였다. 키즈 뷰티 신규 브랜드 ‘피파’는 ‘어린 나이에 시작하라(START YOUNG)’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
국내 키즈 상품도 화장놀이와 피부관리를 결합한 콘셉트로 진화하고 있다. 선크림을 마치 쿠션처럼 퍼프로 찍어 바르는 선쿠션, 마르면 스티커처럼 떼어내는 매니큐어, 붉은빛이 감도는 립밤 등이 대표적이다. 성인 브랜드가 키즈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성인용 색조·베이스 메이크업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정샘물은 키즈 라인을 선보이며 시장 확장에 나섰다.
다만 피부 재생력이 뛰어난 어린이에게 스킨케어 제품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피부 질환이 없는 어린이들은 자외선 차단제 외에는 화장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쓰는 화장품의 성분이 어른용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대형 화장품 브랜드의 한 관계자는 “키즈 제품이라고 해서 따로 생산되는 건 아니고, 어른용의 높은 유분감과 무거운 질감을 덜어낸 것”이라며 “결국 어린이 상품도 구매는 어른들이 하는 거니까, 제품이 아닌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이 ‘자기 관리’라는 이미지로 포장되면서 어린 시기부터 외모 강박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숙명여대 심리치료대학원 놀이치료학과 이영애 교수는 “어린아이를 ‘작은 성인’처럼 만드는 제품과 마케팅은 아이다움을 잃게 하고 어른의 세계에 너무 빨리 발을 디디게 하는 상술”이라며 “외모에 신경 쓰는 발달단계는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외모 관리를 요구하는 건 성장을 재촉해, 중요한 발달단계를 건너뛰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