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을 차명 거래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된 이춘석 의원을 둘러싼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온라인 매체 ‘더팩트’ 사진 기자에 포착된 이 의원의 휴대전화 화면이었다. 사진에는 이 의원이 보좌관 차모씨 명의로 접속된 주식 거래 앱을 살피고 주식을 분할 거래하는 장면이 담겼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만지는 건 대체로 짧은 순간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본회의 도중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건 생중계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본회의장 2층에 위치한 사진 기자석과 1층 맨 뒷자리 의석까지 거리는 불과 10m인 데다가, 성능이 날로 좋아지는 망원렌즈로 확대하면 멀리 떨어진 의석의 일거수일투족도 눈앞에서 보듯 포착되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에선 본회의장 휴대전화 사용 경계령을 내리기도 하고, 일부 의원은 사생활 보호필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사고는 매번 반복됐다.

이춘석 의원 파문 이전에 가장 임팩트가 컸던 휴대전화 화면 포착은 2022년 7월 26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다. 당시 윤 대통령은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며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고,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답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체리 모양의 캐릭터가 엄지를 치켜세운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는데, 이로 인해 ‘체리 따봉’이란 말이 한동안 회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축출되고, 친윤계가 득세한 묘한 타이밍에 유출된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메시지는 숱한 뒷말을 낳았다.
2020년 9월 8일 본회의장에서 카메라에 잡힌 윤영찬 당시 민주당 의원의 문자 메시지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윤 의원은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올라간 걸 보고 보좌진에게 “이거 카카오에 강력하게 항의해주세요”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 하세….”라고 입력하는 순간에 취재진의 레이더에 잡혔다. 네이버 부사장 출신인 그가 포털 사이트 여론을 통제한다는 논란이 일었고, 윤 의원은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가까이는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안상수 전 인천시장의 부인 김모씨, 정찬민·홍문종 전 의원에 대한 특별사면, 심학봉 전 의원에 대한 복권을 텔레그램 메시지로 요청한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됐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특별사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야권 정치인 사면·복권을 요청한 건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일자 송 위원장은 요청을 철회했다.

휴대전화 화면 유출은 대체로 실수지만, 일부 노련한 정치인은 의도적 노출이란 의심을 받기도 한다. ‘최순실 게이트’ 긴급 현안질의가 한창이던 2016년 11월 11일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휴대전화 화면이 촬영된 게 대표적이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박 위원장에게 자신을 향한 공세를 멈춰달라는 요청과 함께 “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고, 박 위원장은 “나에게 충성 말고 대통령 잘 모셔요”라고 회신했다. 하지만 해당 문자가 두 달 전 주고받은 문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박 위원장이 고의로 흘렸단 뒷말이 돌았다.
이재명 대통령도 민주당 의원이던 2022년 9월 1일 휴대전화 화면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된 적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김현지 보좌관(현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 모른다 한 거 관련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검찰과의 전면전이 시작된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메시지였기 때문에, 일각에선 “야당 탄압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