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싶은 만화전 기획한 성인수 사이드B 대표 인터뷰
– 모두가 플랫폼이 좋아할 만화만 기획하는 것은 ‘거대한 고시원’
– 독립만화 작가도 내 작품 좋아하는 독자 찾아 적극 소통해야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구애와 같다. 어떻게 하면 남이 나를(내 결과물을) 보게 하고, 사랑하게 만들 것인가를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한다. ‘독립’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세상에 나온 콘텐츠라고 해서 상황이 다르진 않다.
그래서 말인데, ‘독립만화’를 그리는 방구석 만화가들에게 “세상에 나와서, 내 작품을 좋아하고 나를 궁금해 할 독자와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성인수 사이드B 대표를 최근 서울 성수동 SWA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만났다.
<바이라인네트워크>와는 5년 만의 인터뷰다. 지난달 만화 업계에서 꽤 회자된 ‘하고싶은 만화전’을 그가 기획했다. ‘독립만화’라는 안 팔릴 것 같은 키워드에 사흘간 50개 팀 115명의 작가가 부스를 꾸려 참여했고, 2103명이 방문해 호응했다. 어느 방문객은 “열 웹툰 페스티벌 안 부럽다”는 후기를 남겼다.
‘하고싶은 만화전’이 흥하기도 했고, 때마침 성인수 대표로부터 연락도 왔다. 하고싶은 만화전이 왜 인기를 얻었는지, 독립만화 출판만화의 부흥을 지향하는 그의 사이드B가 영리사업으로 성과가 있었는지 여러모로 궁금해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이 인터뷰는,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혹은 못하는- 일을 하는 이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성 대표는 오가는 시간을 아끼려 사무실 근처에 집을 얻고, 새벽 3시까지 일을 한다면서도 “저는 다행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 이게 막 힘들지는 않아요. 되게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5년 후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다른 그림 찾기. 다섯 곳 이상을 찾아 제보하시는 선착순 3분께는 커피 음료 쿠폰을 발송드립니다. 제보지는 smilla@byline.network 입니다. 이메일 말머리에 [잡았다, 성인수]를 달아주세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하고싶은 만화전’에 대한 호평이 끊임 없이 올라오더라. 반응이 꽤 좋았다. 어떻게 기획했나
처음에는 출판만화책을 만들어 파는 온오프라인 서점으로 사이드B의 문을 열었다. 운영이 쉽지 않았는데, 접긴 아까웠다. 시장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작가도 만들고, 작품 홍보나 판매를 할 수 있는 ‘페어’도 만들고. 그 작가를 출판사, 또는 플랫폼과 연계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우리가 다 만들어서 사이클로 만들어버리자는 생각이었다.
독립만화 종합 매니지먼트사가 되는 건가(웃음)?
독립만화사가 되는 거다(웃음).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고, 아카이빙도 잘 안 됐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우리와 연대하거나, 파트너십을 맺는 작가들을 관리하고 같이 뭔가를 해보는 것에 집중하고자 했다. 예전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운 거다. 그래서 사이드B를 법인으로 전환했고 이후에 교육, 창작 기획, 미디어 전시, 디자인, 커뮤니티 사업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이 모두 결합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마침표이자 완성된 사이클이 ‘하고싶은 만화전’이 된 거다.
주로 어떤 이들이 하고싶은 만화전에 참여했나?
다양하다. 플랫폼이나 메이저 출판사와 일을 하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만화를 꾸준히 내는 분들도 있고, 학교 동아리, SWA 학생도 있다. 취미 삼아 만화를 그리는 일반인도 참여했다. 팀은 50개, 참여 작가는 115명이다. 신청한 팀은 108개로 더 많았는데, 공간 문제로 다 모시진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팀이 참여했다
국내 유명한 여러 출판 페어가 있지만, 거기에 만화를 들고 나간 분들이 “만화 테이블이 적어 아쉽다”는 말을 하더라. 본인들의 팬을 많이 만난다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여기는 만화가 메인이고, 모든 테이블에서 만화를 전시한다. 그 지점에서 일단 매력을 느낀 것 같다. 또, 실질적으로 페어에서 판매도 꽤 많이 일어났다. 참여 작가들이 평소보다 1.5배 정도씩은 더 많이 팔렸다고 얘기를 해주더라. 사러 오신 분들도 5만원 쓸 돈 가지고 와서는 10만원 쓰고 갔다고 하고. 이런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겠지만 “다들 눈이 돌아갔다”고 말했다(웃음). 점잖게 온 출판, 플랫폼 관계자들도 페어 한 바퀴를 돌고 나서는 양손 가득 만화책을 들고 있고(웃음). 진짜 재미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해주는 분이 많았다.
하고싶은 만화전을 하고 나서 본 가능성은 어떤 게 있을까?
에너지다. 여러 아트 페어나 독립출판 페어를 3~4년 정도 줄기차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때 본 셀러들의 에너지와 여기에서의 에너지는 완전히 달랐다. 페어에 온 관람객이 모두 만화 독자이지 않나. 내 팬이 계속 오고, 내 팬이 아니더라도 내 만화에 관심을 가져주고, 그걸 사가는 비율도 엄청 높다. 그래서, 작가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ㅂ다아가겠구나, 작가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페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독립만화나 출판만화를 살 수 있는 페어는 잘 없다. 그런 지점에서 하고싶은 만화전이 만화 생태계에 있는 어떤 동맥경화를 하나 푼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떤 동맥경화 말인가?
지금, 작가나 작가 지망생을 많이 만나는데 그들이 작품 기획을 할 때 하는 첫 번째 말이 “이 만화를 웹툰 플랫폼이 좋아할까”더라.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서 플랫폼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 반대다. 마치 어떻게 하면 판사가 되느냐 변호사가 되느냐 의사가 되느냐와 비슷한 느낌이다. 시장 자체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하고싶은 만화를 하면서 이 만화가 플랫폼에 어울리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내가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방향부터가 한쪽을 바라보고 있다
방향부터 “요즘 뭐가 잘 나가지?”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나?”다. 그냥 만화를 즐기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이 바닥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게 보인다. 이렇게 3~4년만 더 지속되면 판이 다 식는다. 거대한 고시원이 되는 거다.
그런 지점에서 유명 웹툰 플랫폼들이 비판받기도 한다
생각보다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웹툰에 다양한 작품이 올라간다. 순위권에 있는 작품들이 아무래도 대중성을 훨씬 더 많이 담보한 작품이다보니 (특정 장르가 몰려 있다고)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플랫폼이 노력을 안 하고 있느냐?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플랫폼 입장에서도, 우리한테만 맞추는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라, 원석 같은 작가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런 지점에서 본인들도 고민인 거다.
그 역시 동맥경화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만화를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플랫폼도 새로운 작가를 찾는데 고민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냥 하고 싶은 만화를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뭔가를 만들어 버리고자 했다. 만화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그때마다 뭔가에 대항하거나 대응하거나 반항하는 개념의 안티 개념의 단어가 쭉 나오는데 그걸 정리해보면 결국은 ‘당시에 하고싶은 만화’더라.
그래서, 우리는 ‘하고싶은 만화전’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하고싶은 만화 갖고 오면 우리가 받아주겠다, 같이 팔자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네트워크를 통해 업계 관계자를 불러올 수 있을 만큼 다 불러올테니 거기서 팔아라, 그러면 당신 작품을 다 본다. 그러면 이 관계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또 재미있는, 건강한 순환고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플랫폼 관계자들도 평소에는 디지털, 모바일로 된 작업만 보고 팬들의 반응도 댓글로 봐왔는데, 여기와서 진짜 사람을 봤다고 하더라. 자주 일어나지 않아서 잊고 살았던, 사람에게서 오는 ‘에너지’ 말이다. 그 에너지를 받고 “그래, 이런 거지”라는 표정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하고싶은 만화전이 만화 생태계에 동맥경화가 안 일어나게 해야할 일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좀 했다.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영화도 독립영화로 알려진 감독이 계속 독립영화를 하기도 하지만 메이저로 나와 더 유명해지기도 하고, 또 그걸 성공의 지표로 보기도 한다. 그러면 독립만화 작가의 성공 지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주요 플랫폼에서의 연재? 그걸 사이드B가 지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출구전략도 물론 필요하다. 하고싶은 만화전이 아주 잘돼서, 한 번 나오는 걸로 1년 생계를 책임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하다. 한국의 인구로는 (독립만화로 먹고 사는 일이) 절대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을 출판사나 웹툰 플랫폼과 연계하는 일도 하고, 혹은 디자인 회사의 일러스트 표지 제작 등을 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형성을 해드려야 한다. 하고싶은 만화전에 출판사, 플랫폼 관계자들을 오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 괜찮은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서, 한 번 같이 작업을 해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출구전략이다.
그러니까,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웹툰과 독립만화, 출판만화가 대립구도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작가는, 나는 독립만화만 하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상황에 맞춰서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잘 풀어내는 방법을 찾는 거다.
독립만화, 출판만화를 하면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시장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작가님들한테 많이 호소하는 것이 ‘미디어로 나오셔야 한다’는 거다. 예전처럼 작품만 딱 만드는 걸로는 안 된다. 유튜브에 나와서 토크도 하고, 신작 영화가 나오면 감독이랑 배우가 전국 극장을 돌면서 무대 인사를 하듯이 홍보를 해야 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만화를 만드는 일이 정말 위대하고 좋은 일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만화를 만드는 사람과 만화를 봐주는 사람이 만나야 하는 일이다. 작품만 놓고 딱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아주 소소의 천재 작가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작가들은 자기 팬 관리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독자랑 작품이 만나는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작가 역할도 달라졌을까?
그럴 수도 있는데, 한국사람의 특징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혹시 야구를 좋아하나?
3년 보다가 접었다(한화 팬의 3년은 혹독했다).
그러실 수 있다(잠시 침묵). 야구를 보면, 팬들에게 선수는 다 내새끼다. 예를 들어 부산 출신에게 롯데 이대호 선수는 내 새끼다. 나는 이대호를 욕해도 되지만 남들은 하면 안 된다. 한국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정’이라는 문화가 있는데, 내가 누굴 좋아하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그 사람을 챙기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돌인데, 아이돌도 직업은 뮤지션아닌가. 그럼 음악과 퍼포먼스만 잘하면 되는데, 굳이 집에 가는 길에 브이로그를 찍고 팬들과 소통한다.
내새끼가 되기 위한 노력인가?
정을 붙이는 거다. 나를 잊지 못하게, 우리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작가들도 그런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화도) 이미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 시장이기 때문에, 자기를 알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사이드B에서 미디어도 만들고 팟캐스트도 하고 있다.
사이드B를 특징 짓는 철학이나 키워드가 있다면 뭐가 될까?
자체적으로 창작을 할 때 작가님들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뭐냐면, “그래서 이걸 왜 봐야 되는데요?”다. 지금 이 타이밍에, 세상에 볼 것 많은 독자들이 당신의 만화를 왜 보는가. 동시대성이다. 서사적인 부분에서 동시대성을 만드는 작품을 굉장히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일단 사이드B 만큼 퍼포먼스를 내기 힘들다.
지금 하고 있는 교육, 미디어 창작, 기획, 매니지먼트, 페어, 전시 등 모든 부분에서 하나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몇년 간 이 모든일을 동시에 하면서 퍼포먼스를 내는 것은 제가 봐도 쉽지 않다. 그 지점에서는 남다르지 않나(웃음).
5년 전에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포지셔닝했다.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예술가인가, 아니면 사업가인가
지금도 하나하나 다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고싶은 만화전도, 작가님들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까지 디테일하게 준비하진 못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만화 일 외에, 케이블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는데. 지금도 그런가?
지금은 법인 전환을 했고, 과감하게 만화 외의 일을 그만뒀다. 고생길이 시작됐다(웃음). 직원이 있어서 월급도 줘야 하니까, 디자인 외주 작업도 하고, 외부 강연도 한다. 하고싶은 만화전의 리플릿도 우리가 다 만들었다.
그게 막 힘들진 않다. 다행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거라서 되게 재미있다. 그런데 이런 고생이 그렇게 길진 않을 것 같다. 2~3년만 더 고생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그 이후에는 남들이 전혀 가지지 못한 개성을 가진 회사가 될 것 같아서(웃음).
다음 5년 후 인터뷰를 기약하면서, 지금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고싶은 만화전이 끝나고, 개인 SNS에 “봤냐, 만화 페어(fair, 전시 혹은 축제)는 이렇게 하는 거다”라고 올렸다. 그간 수많은 페어를 보면서, 너무 답답했던 지점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페어가 가지는 목적이 뭔지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공서에서 지원하는 행사를 할 때, 잘못된 전문가나 혹은 고민을 덜 하는 전문가를 초빙해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게 다 세금으로 하는 일 아닌가. 우리가 1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줘야겠단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한 것도 있다. 그래서, 껍데기는 좀 가고, 실력이 없거나, 과거에 실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분들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진짜 전문가를 모셔서 페어를 해라. 이 말은 꼭 전해달라.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