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스마트폰·PC 등 핵심 정보기술(IT) 제품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상호관세율이 가장 높은 중국(145%) 내 생산 비중이 절대적인 애플과, 관세율이 중국 다음으로 높은 베트남(46%)에서 스마트폰의 절반을 생산하는 삼성전자가 일단 관세 부담을 덜게 됐다. 다만 조만간 반도체 관세 카드가 예고돼 있어 업계의 긴장감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미 관세국경보호국(CBP)은 11일 오후 홈페이지에 ‘특정 물품의 상호관세 제외 안내’라는 글을 올려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메모리칩,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을 관세 제외 품목으로 지정했다. 미 언론은 “대중 관세 장벽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9일 미 국채 금리 인상의 여파로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한 데 이어, 재차 중국에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에서 잇따라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스마트폰 등에 대한 관세 제외의 배경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애플, 아이폰 80% 중국서 만들어…미 언론 “대중 관세장벽 큰 구멍”
대신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와 관련, “월요일에 매우 구체적으로 답하겠다”며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로 대응할 뜻을 밝혔다.
스마트폰 상호관세 부과 제외 조치의 최대 수혜자는 진퇴양난에 서 있던 애플이다. 애플은 주력 제품인 아이폰의 8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트럼프가 설정한 ‘상호관세 125%+마약 유입 기여도 20% 추가 관세’까지 합산되면 미국 내 아이폰 가격이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공급망을 당장 미국으로 옮기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현실적으로 애플 공급망의 10%만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옮기더라도 3년의 시간과 300억 달러(약 43조원)가 소요되고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관세 부과가 미국 내 물가 상승으로 확대될 우려가 나오자 결국 “예외는 없다”고 한 기존 원칙에서 한발 물러섰다. 다만 ‘좀비 마약’인 펜타닐 원료 유입을 문제 삼아 중국에 부과한 20% 관세 적용까지 면제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삼성전자도 관세 면제 혜택을 받게 될 전망이다. 삼성은 스마트폰의 40~50%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상호관세가 90일간 유예되긴 했지만, 실제 고율 관세가 적용되면 스마트폰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의 PC 제품 역시 베트남 공장이 주요 거점 생산지다.
이번 관세 면제로 범용 메모리 수요 둔화 우려도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미국이 스마트폰·노트북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길 경우 전체 IT 제품 소비가 위축되며 D램·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업황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번 조치가 삼성보다는 애플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46%의 관세를 맞는다 해도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이 더 유리한 측면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불만을 받아들이면서 애플이 관세폭탄을 피해가게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PC 등 핵심 정보기술(IT) 제품에는 최종적으로 품목별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오전 ABC방송 인터뷰에서 “상호관세는 면제되지만 한 달 정도 뒤에 적용될 반도체 관세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제품들이 안심하고 사용될 수 있도록 특별하게 집중된 유형의 관세가 적용될 것”이라며 “반도체와 의약품은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관세 모델이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우림·남윤서 기자,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yi.wool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