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간 적이 있었다. 2011년의 일이었지만 그때의 공포스러웠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이로비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 위험을 감지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경험이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예약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가 출발하고 조금 있다가 기사는 자신의 일행 한 명을 앞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곧 택시비의 일부를 선불로 달라고 했다. 이미 밤 12시 가까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택시에서 내리기에 너무나 어둡고 다시 차편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돈의 일부를 주었다.
택시는 주유소로 들어갔다. 기름을 넣어야 했던 것이다. 주유소에 도착하자마자 남자들이 차량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주변은 어두웠다. 마치 외진 곳에 존재하는 장소처럼 다른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눈매가 사나운 남자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바퀴를 보거나 차량의 이곳저곳을 보는데 수상쩍었다. 나는 폰을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증거를 남기려는 의도보다는 보기 드문 광경을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눈치를 보면서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택시는 무사히 주유를 마쳤다. 앞좌석에 일행이 아닌 기사의 동행자를 태운 택시는 다시 어둠을 달려 민박집 주인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민박집 주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두려움과 긴 비행에 지친 우리를 환영할 줄 알았는데 어디에도 한국인이 없었다. 다시 통화를 시도하면서 믿을 수 없었던 택시라도 붙잡아 두었다. 한참 후 주변에 미리 주차되어 있던 고급 승용차에서 민박집 주인이 창문을 살짝 내린 채, 우리에게 짐을 빨리 싣고 타라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택시에서 내릴 때 주변에 케냐 사람들의 무리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협박받고 있는지 차 안에서 지켜본 것이다. 이런 일들로 범죄와 연결돼 목숨을 잃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민박집은 아파트였고 외국인들만 사는 곳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은 실탄을 장착한 총을 갖고 있고 아파트단지는 철조망이 쳐진 안에 있었다. 우리는 나이로비 시내 관광을 하러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무서운 총 앞을 지나가야 했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은 맛집보다는 안전한 식당을 찾는 일이 우선이었다. 인도식 카레 집에 갔을 때 택시를 문 앞에 대기시켜 걷는 거리를 최소화했다. 그런데 주인은 바깥을 살피며 목걸이를 빼서 가방에 감추라고 작은 사인을 보냈다. 종종 목걸이를 가져가려고 칼을 들이대는 일이 있다고 했다. 케냐 전통 음식점에 갔을 때는 택시 기사가 주차장 주변의 한 소년에게 돈을 주면서 자동차를 부탁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차량에서 바퀴나 백미러를 떼가지 못하도록 지켜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음식은 맛있고 사람들은 순박하게 웃음 지었지만 극심한 가난과 빈부의 격차는 사람들을 흉폭하게 만들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의 차로 유명한 시장을 갈 때였다. 더운 날임에도 창문을 닫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도록 했다. 달리는 차량에서도 창문 틈으로 손을 넣어 물건을 가져가고 경찰은 범죄를 신고해도 돈을 주지 않으면 돕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상황을 이른 것이다. 그래도 부자들은 개인 경비를 두고 넓은 대지에 철조망을 두르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한밤중에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들고 앞뒤를 두려워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전례 없이 망령이 떠도는 시기이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여 군인이 무기를 들고 국회와 선관위로 동원되었다. 그 장면은 영상과 미디어로 실시간 국민에게 송출되었다. 그런데 계엄령을 선포한 당사자는 처벌도 받기 전에 버젓이 망령처럼 구치소에서 걸어 나왔다. 일반 국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혜가 주어진 것이다. 케냐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랫동안 계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비호하는 사람들도 믿을 수 없이 많다. 버젓이 거짓을 말하고, 그것을 힘으로 거래하고, 부끄러움이 없이 자신의 보신만을 추구하는 상황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치스럽고 괴롭다.
부와 권력을 사유화해서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망령이 사라지지 않고 그때 겪었던 나이로비처럼 되는 게 아닐까. 옳고 그름, 거짓과 정직을 구분하여 지켜나가고 당장 눈앞에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철조망 없이 함께 살 수 있는 도시, 이런 것을 잃어버릴까 두렵다.
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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