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입구는 일반인의 도보 통행이 통제됐다. 입구엔 ‘드론 비행 금지’ 문구가 세워져 있었다.
인근을 통제하던 경찰은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라며 “당선인을 만나려고 주요 인사들이 집결하기 때문에 경호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한국 대통령은 어떻게 되는 거냐. 누가 마러라고에 오느냐”며 먼저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러라고를 ‘순례지(pilgrimage)’에 비유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비롯해 특히 “전세계 굴지의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마러라고 순례’에서 당선인에게 돈과 칭찬을 퍼붓고 있다”면서다. 그리고 주요 인사들의 순례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16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장에 손정의(孫正義ㆍ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 나타나 그의 1000억 달러 투자를 “기념비적 사건”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취임 전 회동을 거부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온다면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최근 마러라고에서 중국의 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추쇼우즈(周受資ㆍ미국명 Shou Chew) 최고경영자(CEO)와 만났다. 틱톡은 트럼프 취임 전날인 다음달 19일 퇴출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틱톡 CEO를 만난 트럼프는 16일 회견에선 “틱톡에 대해 따뜻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앞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소유한 마크 주커버그 메타 CEO도 지난달 트럼프 당선 직후 마러라고에서 트럼프를 만났다. 트럼프는 틱톡 퇴출 논란과 관련 “틱톡이 없으면 공공의 적인 페이스북이 커진다”며 주커버그에 대한 노골적 비난을 서슴지 않아왔다.
이밖에 인공지능회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를 비롯해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회사들을 트럼프의 취임식 준비를 위한 펀드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애플, 넷플릭스 등 굴지 기업 대표들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의 기업 중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7~18일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으로 마러라고를 방문했다. 트럼프와 만날지는 불확실하다. 정 회장은 오는 19일로 예정된 트럼프의 고액 후원자를 위한 만찬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정 회장의 마러라고 방문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생한 정부의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이뤄지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정 회장의 마러라고 방문은 기업의 '각자도생'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정부가 하지 못하고 있는 트럼프 공략을 기업이 대신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트럼프는 첫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심지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까지 언급했지만 한국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트럼프가 리더십 공백이 생긴 한국을 노골적으로 '패싱'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미국의 대표적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대담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트럼프와 나란히 다자 회의에 참석한다면 서로 만날 수 있겠지만, 트럼프가 한국에 가거나 반대의 상황(한 대행의 방미)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