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살짝 데쳐야 개운한 맛 살아나…산갓김치, 톡 쏘는 매콤함 일품

2025-05-19

“갓 밑동 가오니 가늘게 썰라고 하여야 맛이 나으니 잘게 썰라고 하라고 하시옵.”

이 글은 1847년 음력 11월18일에 여강 이씨 부인(1792∼1862)이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씨 부인의 남편은 학봉 김성일(1538∼1593)의 10대 종손 김진화(1793∼1850)다. 이씨 부인은 15세에 혼인한 뒤 줄곧 지금의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살았다. 당시 남편 김진화는 전라도 무장현(지금의 전북 고창군 무장면)의 현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앞의 글을 요사이 말로 풀면 다음과 같다.

“갓의 밑동을 보냅니다. 요리할 때 가늘게 썰라고 하십시오. 그래야 맛이 좋으니 꼭 잘게 썰라고 하십시오.”

이씨 부인은 지면을 아끼려고 ‘옵니다’를 ‘옵’으로 줄여 썼다. 당시 안동에서 무장은 800리 길로 요즘에도 승용차로 4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다. 이 먼 길을 나서는 하인에게 이씨 부인은 왜 하필 갓의 밑동을 보냈을까?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만물박사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갓의 밑동으로 만든 음식 이름을 ‘개근산(芥根蒜)’이라고 하면서 “맛이 매우 개운하고 진하여 위를 진정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이씨 부인은 편지 서두에서 남편에게 “복통 어떠하십니까? 복통이 아마 수토(嗽吐·기침이 나면서 토하는 병증)로 그러신 듯 답답하고 애처로우며 두렵사오나 면하실 도리 없으니 답답합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래서 하인에게 갓의 밑동을 들려 보냈을 것이다.

이씨 부인은 같은 편지에 ‘갓채’ 요리법도 적었다. “함께 보낸 갓채는 물을 팔팔 끓여서 위에 부으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맛이 좋으니 꼭 그렇게 하라고 시키십시오”라고 썼다. 갓채 요리법은 이씨 부인보다 150여년 앞서 살았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에도 나온다.

“산갓을 다듬어 찬물에 씻고 다시 더운물에 헹구어 작은 단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구들이 아주 뜨거우면 옷으로 단지를 싸서 익히고 그렇지 않으면 솥에 단지를 넣어 중탕으로 익힌다. 너무 뜨거워서 산갓이 지나치게 익어도 좋지 않고 덜 뜨거워 산갓이 익지 않는 것도 좋지 않다. 산갓을 찬물에만 씻고 더운물에 안 헹구면 쓴맛이 난다.”

장계향은 산갓의 쓴맛을 없애려면 뜨겁게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음식의 이름을 ‘산갓김치’라고 적었다.

산갓은 산에서 나는 야생 갓이다. 씨앗인 겨자 맛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산갓에는 다른 채소에 없는 독특한 매운맛이 있다. 그래서 요리할 때 반드시 살짝 데쳐야 한다. 이씨 부인은 무장현 현청(縣廳)에서 현감의 음식을 장만해주는 기생이 혹시나 이 방법을 모를까 걱정해 “그리 시키옵”이란 말을 남편에게 남겼다.

이씨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71편에 이른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남성이 벼슬자리에 나가면 부인 대부분은 살림을 도맡아야 했으므로 동행치 못했다. ‘생이별’ 속에서도 이씨 부인은 남편 김진화를 걱정해 편지는 물론이고 온갖 먹을거리를 하인 편에 보냈다. 5월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날’이다. 강원도 농가에서 만든 산갓김치로 부부의 매콤한 사랑을 기념해보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교수·음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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