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부자들 최병길씨 인터뷰

초등학교 교사로 27년을 일했다. 매일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이 즐거웠다. 그런데 갑작스레 암 진단을 받고 교단을 떠났다. 삶이 무너질 것 같던 그때 최병길(71)씨는 누군가를 돕는 삶을 선택했다. 최씨는 1992년 월드비전 후원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매주 화요일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본부를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해외에서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분류하고, 후원자 안내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정기 봉사를 쉰 적이 없다.
기부로 30년, 봉사로 20년을 보낸 최병길씨를 지난달 19일 만났다. 그는 스스로를 ‘덤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갑니다.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나눔을 이어갈 뿐이죠.”
1992년이면 기부가 낯설던 시절인데요.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은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방학이면 보육원 봉사도 다녔고요. 당시엔 기부 문화가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월드비전 소식지를 보고 ‘이건 해야겠다’ 싶었어요. 아프리카 아이들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왜 남을 돕느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기부는 부자들 혹은 일부 사람들의 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꾸준히 기부를 지속하니까 주변 친구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IMF 외환위기 등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후원을 계속한 이유는요.
“가진 게 많아서 한 게 아닙니다. 밥 먹고 살 만큼은 됐고, 나누면 오히려 제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끼면 남고, 나누면 채워지더라고요.”
암 투병이 삶을 바꾸는 큰 계기였다고 들었습니다.
“교사 생활 27년 차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 받으니까 병원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기운도 빠지고 그랬어요. 그런데 몸보다 마음이 더 무너지더군요.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죠.”
투병 중에 봉사를 시작하셨다고요.
“복직은 했지만 전 같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는 일을 그만두라고 했어요. 아이들 앞에 서는 건 좋았지만, 마음이 자꾸 멀어졌어요. 분필 드는 일도 힘들어지면서 결국 명예퇴직하고 봉사활동을 나갔어요. 월드비전 본부에서 사무 업무를 도왔어요. 일주일에 하루, 세 시간 정도요.”
몸이 힘든 상황에서 봉사를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제 안에 뭔가가 치유되는 느낌이었어요. 봉사활동을 할 때는 마음이 편했어요. 누군가를 도우면 나도 덜 아프더라고요. 살면서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어요.”
기부와 봉사를 수십 년 이어오면서 한국 사회의 변화도 느끼셨을 텐데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적은 금액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더라고요. 늘 부족한 돈을 아껴 기부한다니 참 보기 좋아요. 예전에는 기부를 특별한 것으로 여겼는데 많이 달라졌어요.”
봉사 현장 분위기도 바뀌었을까요.
“예전에는 아날로그였죠. 손편지, 수기 보고서. 지금은 디지털로 더 체계적이에요. 하지만 사람을 향한 마음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아프리카 잠비아에 후원아동을 만나러 가셨다고요.
“말로만 듣던 지역을 직접 본다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어요. 미얀자라는 아이를 만났는데, 조그만 손으로 제 손을 꼭 잡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아이들에게 치약이나 칫솔 같은 생필품을 줬더니 버리고 가는 거예요. 평소 쓰던 물건이 아닌 거죠. 물품 지원도 중요하지만, 인식을 전환하는 교육도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기부금이 제대로 쓰일까 걱정하는 분들 이해합니다. 저도 예전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직접 보니 의심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일하는 현장을 보면 알게 돼요. 투명하게, 정성껏 쓰이고 있었어요.”
기부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은 어땠을까요?
“훨씬 허전했을 겁니다. 남을 돕는 일이 결국 제 삶을 살게 했어요. 병을 이겨내는 데도 큰 힘이 됐고요.”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너는 잘살고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어릴 적 책만 보던 염세적인 아이가 이렇게 살아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기부 문화가 더 퍼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신뢰와 공감이요. 기부금이 잘 쓰이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이 필요해요. 그 두 가지가 있다면 기부와 봉사로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작은 일이라도 지속해서 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진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능한 한 오래 기부하고 싶어요. 큰돈이 아니어도 꾸준히. 그리고 봉사도 계속하려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세요.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그걸 나눌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이죠.”
분쟁지역 아이들을 돕는 방법

전쟁 속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자원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지킬 수 있는 보호와 지원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사람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분쟁지역 아이들을 지원하는 ‘2025 기브어나이스데이(Give a nice day)’ 캠페인을 6월 4일까지 진행한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는 캠페인에는 사람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공명·아이린·윤소희·정건주·최희진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전쟁 속 아이들과 후원자를 연결하는 상징인 ‘하루팔찌’를 착용하고 아이들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캠페인 참여자에게 전달하는 하루팔찌는 구호 현장의 아이들이 착용하는 난민등록 팔찌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구호 현장 속 아이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노란색·흰색·파란색 등 세 가지 색상의 난민등록 팔찌를 발급받는다. 노란 팔찌는 영양실조, 성폭력 피해, 장애 등으로 특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착용한다. 흰색 팔찌는 부모를 잃어 보호자가 필요한 아동, 파란 팔찌는 그 외 난민으로 등록이 완료된 아동이 착용한다.
캠페인을 통해 모금된 후원금은 의료·영양·교육·심리치료 등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쟁 지역 아이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전 세계 아동 5명 중 1명은 전쟁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아이들에게 당연한 일상을 되찾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캠페인 참여 희망자는 월드비전 공식 홈페이지 ‘사람엔터테인먼트 X Give a nice day 캠페인’ 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