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외진단 의료기기 기업들이 코로나19 엔데믹 이후부터 이어지고 있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신사업 확장에 한창이다. 업체들은 감염병, 만성질환, 암 동반진단 등 시장성이 있는 분야로 진출해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111조 시장 만든 코로나19···엔데믹 오니 K-체외진단 하락세
14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체외진단 의료기기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진단키트 판매 증가로 급성장했다.
글로벌 체외진단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지난 3년간 연평균 10.93% 성장하며 지난해 786억9000만달러(한화 약 110조6381억원)를 기록했고 오는 2029년에는 연평균 7.2%씩 성장해 1194억5000만 달러(한화 약 167조9467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시장은 2020년부터 비약적 성장을 보이며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됐다. 2019년~2022년 국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약 32.5%였다.
코로나19 진단키트에 의해 주도된 시장 성장세는 엔데믹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2022년~2023년 생산, 수출, 수입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80.5%, -75.4%, -1.2%로 축소됐다.
지난해 국내 체외진단 의료기기 생산업체는 전년보다 17개소 줄어든 359개소로 집계됐고, 수출 업체는 117개소로 전년 대비 26개소 감소했다.
이에 진단업체들은 그간 코로나 진단키트를 판매해 벌어들인 현금을 기반으로 비(非)코로나 진단사업에 주력하고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등 상황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최근 시장 성장이 예상되고 있는 내분비학, 종양질환, 감염질환 분야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HLB파나진 '렉라자 동반진단' 매출 본격화
지난해 출범한 HLB파나진은 암 진단 분야에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앞서 HLB그룹은 지난해 6월 유전자 진단 전문기업 파나진을 인수하고 8월 HLB파나진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엔데믹 전환 후 코로나19 진단키트, 의료용 면봉 등 검체채취키트 매출이 줄면서 HLB헬스케어사업부의 실적이 악화한데 따른 것이다. 작년 2분기 기준 HLB헬스케어사업부 매출은 1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86% 감소했다.
파나진은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 오리지널 동반진단기기(CDx) '파나뮤타이퍼 R EGFR'를 최초로 허가받은 기업이다. CDx는 표적치료제를 사용하기 전 개별 환자의 특정 바이오마커 보유 여부를 진단하는 것이다. 특정 치료제에 대해 안전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환자군을 선별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적치료제와 CDx가 같이 개발되고 함께 허가를 받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동반진단 시장은 항암제 시장과 함께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동반진단 시장 규모는 지난해 85억1000만 달러(11조9702억원)에서 오는 2032년까지 223억7000만 달러(31조4656억원)로 성장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렉라자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선 '파나뮤타이퍼 R EGFR' 처방이 필수다. 렉라자는 작년 6월 1차 치료제로 국내 허가 받고 올 1월 보험 급여가 등재되면서 빠르게 처방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렉라자는 올해 1000억원 이상의 처방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HLB파나진의 동반진단 제품 판매 증가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회사 측은 "현재 꾸준히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 판매 규모는 비공개"라고 전했다.
HLB파나진은 이 외에도 폐암 표적치료제 '루마크라스'에 대한 동반진단 의료기기 '온코텍터 KRAS' 등 다양한 동반진단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암 분자진단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출범 직후 미국 정부 주도의 '캔서엑스'(Cancer X)에 합류하기도 했다.
또 회사는 지난 5월 '퀀텀닷' 기술을 최초로 진단 분야에서 구현해낸 초정밀 진단기업 바이오스퀘어 지분 90%를 인수해 면역진단 분야로도 제품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퀀텀닷'은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첨단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기술로, 극소의 반도체 입자로 빛의 흡수와 방출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이 기술은 원래 TV 화면의 색상을 더 선명하게 표현하는 데 사용돼 왔지만 바이오스퀘어는 나노셀 기반의 나노입자 패키징 기술을 이용, 이를 생물학적 타겟 마커와 결합시켜 질병을 식별할 수 있는 고감도 다중검출 진단 도구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RSV), 코로나19, 인플루엔자 A+B 등 각종 호흡기 질환 등 감염병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제품들을 보유 중이다.
회사는 인공지능(AI) 신약개발사인 '아론티어'에도 투자했다. 자사의 암진단 기술력에 바이오스퀘어의 호흡기 진단과 아론티어의 AI진단 기술력을 더해 예측부터 진단까지 진단분야 전 영역을 커버하는 글로벌 수준의 진단기업으로 성장해 간다는 구상이다.
회사 측은 "HLB헬스케어사업부는 그간 확보한 현금으로 신약개발과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투자 등을 진행했다. 특히 주력인 암 진단 제품의 신제품 개발을 지속하고 있고, 감염병 진단 제품 라인업 확장 위한 연구개발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는 바이오스퀘어를 인수해 분자진단을 넘어 면역진단 쪽으로 확대하고 있고, 아론티어와 협업해 신약개발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 중이다 진단 영역에서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SD바이오·씨젠도 M&A 카드 꺼내
에스디바이오센서(SD바이오센서)는 판로 확대, 검사 영역 확장 등을 통해 재도약에 나서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국내 체외진단업계 최초로 3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냈을 만큼 코로나19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회사의 매출액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730억원에서 이듬해 1조원을 훌쩍 넘긴 1조6862억원을 기록했고, 2021년은 2조9300억원으로 3조원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다. 2022년 매출액은 2조2932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말부터는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면서 한때 시가총액이 8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관련 매출이 줄며 매출이 대폭 감소했고, 작년에는 전년 대비 78.8% 감소한 620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 규모는 2481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회사는 '포스트 코로나' 전략으로 인수합병(M&A)을 택했다. 독일 체외진단기기 유통사 베스트비온, 이탈리아 유통사 리랩, 미국 메리디언 바이오사이언스, 파나마 체외진단 유통사 '미래로' 등을 잇달아 인수해 해외 직판 체제를 구축했다. 회사는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브라질, 파나마,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 법인을 두고 호흡기질환,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뎅기열, 당뇨병 등 현지 질병에 특화된 진단 제품을 공급하며 매출 확보에 나섰다.
자회사 인수 효과는 올해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회사는 올 1분기부터 신속면역진단, 혈당측정, 형광면역진단, 분자진단 부문에서 골고루 매출을 올렸다. 3분기 기준 전체 매출액에서 해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3%에 달했다.
브라질 법인은 올 3분기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C형 간염 진단키트의 정부 입찰 수주 및 코로나19, 뎅기열 바이러스 진단 제품 공급을 통해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100% 증가했다.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파나마 법인도 3분기 영업이익 기준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누적 매출액은 5145억원, 영업손실은 360억원이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했고 영업손실을 83.5%로 개선됐다. 다만 영업손실의 주요 원인은 메리디언의 연결회계처리에 따른 무형자산상각비(577억원)로, 이는 현금 유출이 없는 회계적 비용에 해당한다.
회사는 자체 플랫폼의 검사 영역도 확장하고 있다. 면역화학진단 제품인 스탠다드 Q(STANDARD Q)는 코로나19를 비롯, 인플루엔자, 지카, 말라리아, 뎅귀열, HIV, 간염, 매독 등 다양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형광면역진단 브랜드 '스탠다드 F'는 현재 52가지의 질환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며, 북미, 서유럽 등 전세계 7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현장 분자진단 플랫폼 '스탠다드 M10'도 코로나 외 독감, RSV, 코로나19-호흡기 2종 동시 검사, 결핵 등 7종의 신제품을 추가로 개발했다.
회사 측은 "미주 및 아프리카 권역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상승했다. 앞으로도 현지 입찰과 제품 라인업 확장 등을 통해 해외 법인의 지속적인 매출 상승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에스디바이오센서와 양대산맥을 이루던 씨젠은 중장기 신사업 전략인 '기술공유사업'과 함께 비코로나 제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기술공유사업은 신드로믹 정량 PCR 기술과 시약개발 자동화시스템(SGDDS)으로 대표되는 씨젠만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응집한 진단 및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각국 대표기업들에게 공유하고, 전문가가 현지 맞춤형 진단제품을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회사는 이스라엘 하이랩스, 스페인 웨펜 등과 기술공유사업 본계약 체결을 마치고 법인설립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2월에는 소프트웨어 기획 전문회사 브렉스(Brex) 지분을 100% 인수해 맞춤형 소프트웨어 기획·개발 및 관련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또 회사는 전체 매출에서 호흡기 세균(PB), 호흡기 바이러스(RV), 성매개감염병(STI) 등 비코로나 제품 비중을 높이고 있다.
씨젠의 비코로나 제품 매출은 13분기 연속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올 3분기 기준 진단시약과 추출시약을 합한 총 시약매출은 90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83%를 차지했다. 진단시약 가운데 비코로나 제품 매출은 총 시약매출의 85%인 769억원에 달했고 추출시약 매출은 96억원에 달했다.
코로나 제품 매출은 39억원이었고, 시약 매출 외 진단장비 등 상품 매출은 184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폐렴과 백일해가 확산되고 남반구 지역 수요가 늘면서 PB, RV 제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7%, 52% 급증했다 소화기(GI) 종합검사 제품과 STI 제품 매출 역시 신규고객 증가 등의 영향으로 각각 29%, 14% 늘었다.
지역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유럽이 59%로 가장 높고 아시아 18%, 미주 13%, 한국 10%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회사는 올 3분기 매출액 1088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대비 18.4%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53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권영재 씨젠 IR실장은 "비코로나 제품을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된다는 것은 글로벌 진단시장에서 씨젠의 신드로믹 검사 제품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우수한 제품력을 바탕으로 매출 증대 활동을 강화할 것이며 기술공유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디텍메드·오상헬스케어 '실적 선방' 배경은 비코로나
바디텍메드는 코로나 엔데믹 이후에도 실적 선방에 성공했다.
회사는 올 3분 누적 매출액 1069억원, 영업이익 24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7% 10.4% 성장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은 22.4%를 기록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성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중동 및 북아프리카 3분기 매출은 101억원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주요 진단 영역 중 심혈관, 호르몬, 당뇨 등의 비감염성 질환 부문이 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3분기 기준 기타 질환 관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증가한 8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타 질환 부문에는 비타민D 진단 제품과 빈혈 여부를 진단하는 헤모크로마 제품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헤모크로마 제품 매출은 연평균 30% 이상, 비타민D 제품은 연평균 46% 성장하면서 매출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비타민D 진단 제품은 2016년 출시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3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최의열 바디텍메드 대표이사는 "소형 진단기기를 기반으로 진단키트 매출이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추가 성장 모멘텀 확보를 위한 전략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올해 말부터는 조인스타를 통해 중국 내 만성질환 모니터링 진단 제품을 본격적으로 공급할 예정이어서 내년부터 실질적인 매출 기여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오상헬스케어는 연속혈당측정기(CGM)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신사업으로 낙점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CGM 기업 알레헬스에 497억원을 투자했다. 회사 관계자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연속혈당측정기와 신제품 출시, 생산 거점 현지화와 신사업 진출 등에 나설 계획"이라며 "연속혈당측정기는 내년 본임상을 거쳐 2026년 국내에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상헬스케어는 새 먹거리 사업으로 '연속혈당측정기'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상헬스케어는 2022년 말 엔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1억개의 자가진단키트 수주에 성공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지난 4월에는 코로나19/독감 콤보키트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긴급사용승인(EUA) 받기도 했다.
회사는 이같은 흐름을 신사업에서도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오상헬스케어는 지난 4월 미국 연속혈당측정기 개발기업 '알레 헬스'에 약 50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알레 헬스는 현재까지 45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 및 등록하였으며 상용화를 위한 스마트 팩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중국 국가약품감독 관리국(NMPA)에 1차 서류를 제출 완료했으며 2026년 미국 FDA 승인을 목표로 2025년 미국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약 5억2900만 명에 이르는 글로벌 당뇨병 환자 수가 2050년에는 13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당뇨병 유병률도 6.1%에서 2050년 9.8%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 환자는 식습관 변화와 고령화로 매년 증가하고 있어 연속혈당측정기 시장 규모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