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서 발생한 개구리 피부병…걸리면 씨 말렸다

2024-11-12

항아리. 예쁜 이름이다. 항아리의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은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안정감과 위안을 준다. 항아리곰팡이는 어떨까? 항아리 모양의 곰팡이 균 안에는 홀씨들이 있는데 이 홀씨들이 다 자라면 하나씩 빠져나와 다른 숙주를 찾아간다. 이름만 보면 장을 숙성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장소에 따라서는 매우 무서운 놈이다.

항아리곰팡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종은 바트라코키트리움 덴드로바티디스(Batrachochytrium dendrobatidis). 바트라코는 개구리, 키트리움은 항아리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그리고 덴드로바티디스는 이 곰팡이가 처음 발견된 숙주 개구리와 관련이 있는 명칭이다. 그러니 ‘어떤 개구리에서 처음 발견된 항아리 모양의 곰팡이’라는 뜻인데 이름이 너무 복잡하다 보니 과학자들은 그냥 Bd로 줄여서 쓴다. 양서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곰팡이다.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중앙아메리카의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 파나마황금개구리(Atelopus zeteki)가 살고 있었다. 파나마 원주민들에게 파나마황금개구리는 단순한 개구리가 아니었다. 파나마 전설에 따르면 황금개구리는 죽으면 금으로 변한다. 황금개구리는 육체가 사라진 후에도 영혼은 남아 땅을 지킨다. 파나마 원주민들은 야생에서 황금개구리를 만나면 일년 내내 행운이 깃든다고 믿었다. 파나마황금개구리는 개인의 행운과 국가 번영의 상징이었다. 복권에서부터 공공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장식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에 마스코트로 등장하였다.

파나마황금개구리는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지키려는 파나마의 노력을 상징하는 국가적 자부심이었다. 파나마 열대우림에는 황금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파나마황금개구리 울음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바로 Bd라고 불리는 항아리곰팡이가 파나마 열대우림에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파나마황금개구리는 2006년 이후 야생에서 발견되고 있지 않다. (동물원에는 아직 남아 있다.)

Bd의 피해는 파나마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남아메리카의 울창한 정글에서부터 호주의 고요한 개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호주 퀸즐랜드 남동부에는 남부위부화개구리(Rheobatrachus silus)라는 육식성 고유종이 살았다. 남부-위-부화-개구리로 끊어 읽어야 뜻이 보인다. 다른 개구리처럼 체외수정을 하지만 한 번에 11~25개의 적은 알을 낳는다. 알이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는 알을 삼킨다. 알은 뱃속에서 올챙이를 거쳐 개구리로 자란다. 6~7주 후 어미는 새끼들을 토해낸다.

곤충을 먹는 육식성 개구리인데 알, 올챙이, 새끼 개구리는 왜 위장에서 소화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뱃속에서 새끼를 기를 때는 프로스타글란딘E가 분비된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조절 기능을 하지만 호르몬은 아닌 조절 물질이다. 호르몬은 특정한 샘에서 만들어져 혈액을 통해 먼 표적기관에 전달되지만 프로스타글란딘은 세포 안에서 합성되어 그곳에서 작용한다. 프로스타글란딘E가 분비되면 위산이 생성되지 않아 소화작용이 멈춘다. 그래서 새끼가 어미 뱃속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

호주의 남부위부화개구리는 1972년 퀸즐랜드 남동부의 열대우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개구리다. 과학자들이 여름 내내 관찰하는 동안 열 마리 개체 중 단 두 마리만 3m 이상 이동했을 뿐이다. 1979년부터 갑자기 개체 수가 줄어들더니 1981년 이후 야생에서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동물원에서 키우던 개체도 1983년 죽었다. 2000년 멸종으로 선언되었다. 과학자들은 나중에 그 원인이 Bd였을 거라고 추정했다. 호주 과학자들이 Bd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개구리 피부 기생하며 포자 퍼뜨려

감염될 땐 탈수·심부전 겪고 질식사

파나마황금개구리 등 궤멸 못 피해

수백만년 살다 수십년 만에 ‘위기’

연구자들, 발원지 ‘한반도’ 밝혀내

‘무당개구리’ 서양인들에겐 매혹적

1970년대 ‘애완동물’로 전 세계 확산

한국선 수백년 공존하며 피해 없어

같은 지역에 살던 뾰족코급류개구리(Taudactylus acutirostris)도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 밤에 활동하는 대부분의 개구리와 달리 낮에 활동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갈색에서 회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을 띠고 주변 바위나 낙엽과 잘 어울리는 무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위장술은 포식자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뾰족한 코 때문에 찾으려고 하는 과학자들의 눈에는 잘 띄는 개구리 종이었다. 개체 수 자체가 많았다. 그런데 1988년부터 개체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해 1992년부터 멸종위기종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원인은 Bd로 추정된다.

도대체 Bd는 왜 개구리를 멸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되었을까? Bd는 개구리의 피부에 자리를 잡고 케라틴을 파먹고 자란다. 곰팡이 포자는 금세 개구리 피부를 덮고 키드리디오마이코시스라는 피부병을 일으킨다. 케라틴을 파먹고 자란다면 떠오르는 병이 있다. 무좀이다. 그러니 키드리디오마이코시스 개구리 무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무좀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지만 죽을병은 아니다. 귀찮은 잡병에 불과하다.

그런데 개구리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개구리는 피부로 수분과 필수 전해질을 흡수한다. 피부가 망가지면 탈수와 심부전이 생긴다. 개구리는 호흡의 60%를 피부에 의존하므로 Bd에 감염되면 질식해서 죽게 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Bd 피해는 개구리를 넘어서 다양한 양서류에게 확산되었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에 양서류의 미스터리한 대량 폐사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표본 채집과 유전자 분석을 통해 연구자들은 Bd가 수십년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여러 대륙에 퍼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Bd 확산 속도는 놀랄 정도로 빨랐다. 불과 수십년 만에 양서류가 서식하는 모든 대륙으로 확산되면서 현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생물다양성 위기를 초래했다. 수백만년 동안 생존해왔던 수백 종의 양서류가 단 수십년 사이에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했다.

유독 남아메리카와 호주에서 피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대륙과 분리되어 Bd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와 잉카 제국이 수백명에 불과한 스페인 군대에 무너진 이유가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라는 낯선 질병의 궤멸적인 피해인 것처럼, 경험해본 적이 없는 Bd가 두 대륙의 양서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 것이다.

놀라운 일은 Bd의 출처가 한반도라는 사실이다. 1970~1980년대에 연구자들은 중앙아메리카와 호주에서 처음으로 알 수 없는 개구리의 죽음을 기록했지만 1990년대 들어서야 그 원인으로 Bd를 지목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동아시아, 특히 대한민국이 Bd의 발원지로 지목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개구리에게 Bd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고속도로를 놓기 위해 터널을 뚫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느라 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 서식지가 파괴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곰팡이 때문에 개구리들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듣지 못했다. 왜 한국 개구리에게 Bd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Bd는 수백년 동안 한국 토종 양서류와 공존하며 피해를 입히지 않고 함께 공진화했다.

문제는 한국의 무당개구리(Bombina orientalis)가 너무 아름답다는 것. 한국 사람들은 무당개구리를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싫어한다. 무당이라는 이름 자체가 약간의 혐오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다르다. 개구리 피부병을 특집으로 다룬 2018년 5월11일자 ‘사이언스’ 표지에 실린 무당개구리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한국 무당개구리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 국제적인 애완동물 거래가 활발해졌다. 이국적인 애완동물, 교육용 표본, 과학 연구 대상으로 한국의 무당개구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때 Bd도 함께 퍼져나갔다.

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의 급격한 감소는 광범위한 생태계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왜냐하면 양서류는 환경 지표이기 때문이다. 환경 지표란 환경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생명체라는 뜻이다. ‘자연의 경고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오염, 질병, 서식지 손실 같은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환경 지표로 간주된다. 개구리 개체 수가 갑자기 감소하거나 사라지기 시작하면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주변에서 개구리 소리를 얼마나 듣고 계신가?)

Bd에 의한 세계적인 개구리 멸종 사건은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바다와 국경을 넘어 먼 거리를 이동하여 먼 곳의 생태계에 파괴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세계는 경제적, 사회적으로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대륙을 가로질러 파급될 수 있다. 이제는 확실히 인간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활동으로 생기는 후유증이 어느 때보다도 분명해졌다.

전 세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 치명적인 병원균이 한국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은 우리 어깨에 윤리적인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미세한 곰팡이가 남아메리카와 호주에 이르기까지 멀리 떨어진 생물종의 멸종에 영향을 끼친 사건에서 우리는 냉정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 환경 보호에 대한 더 깊은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찰과 행동의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는 이제 유사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연구, 보존, 생물 보안 조치에 투자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야생동물 거래를 더 강력히 규제하고, 잠재적 병원체가 확산되기 전에 감시하고 억제하는 국제적 노력에 함께해야 한다. 각 지역의 생물자원관, 과학관, 자연사박물관이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힘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생물의 운명을 멸종위기로 몰아 넣을 것인가, 자연을 더 깊이 아끼고 생명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는 세계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파나마황금개구리, 남부위부화개구리, 뾰족코급류개구리를 비롯한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빠진 양서류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무당개구리는 그냥 우리나라에서만 살게 하자. 그리고 무당개구리에 대한 혐오의 마음을 거두자. 잘 보면 예쁜 개구리다. 항아리곰팡이(Bd)도 그냥 우리나라에만 있으면 이름처럼 예쁜 곰팡이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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