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에릭슨 심리사회적 발달이론과 치유농업

2025-10-16

[전남인터넷신문]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 1902~1994)은 인간의 성장을 ‘평생의 심리사회적 발달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여덟 번의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한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위기’를 경험하지만,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성숙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이 단지 개인의 본능이나 성적 충동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심리적 성장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발달의 여덟 단계는 한 인간의 생애를 농사의 과정처럼 보여준다. 영아기에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배우고, 유아기에는 스스로 해보려는 자율성을 키운다. 아동기는 근면성과 협동을 배우며,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질문과 마주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친밀함을 배우고, 중년기에는 다음 세대를 돌보며 생산성을 실천한다.

그리고 노년기에 이르면 삶을 돌아보며 자아를 통합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에릭슨은 인간의 성장을 “삶의 심리적 경작”이라 불렀다. 흙 속에서 씨앗이 싹을 틔우듯, 인간의 마음도 관계와 돌봄 속에서 자라난다는 뜻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치유농업은 에릭슨의 발달이론과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치유농업은 단순히 농작업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정서를 안정시키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발견하고, 사회와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흙을 만지고, 씨를 뿌리고, 새싹을 기르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며, 인간이 잃어버린 성장의 단계를 다시 밟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아가 처음으로 씨앗을 손에 쥐고 물을 주는 행위는 자율성의 시작이다. “내가 돌보는 생명”이라는 감각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준다. 아동이 식물을 가꾸며 하루하루 변화를 관찰하는 일은 근면성과 성취감을 키운다. 청소년에게 농장은 자신을 찾는 공간이 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나는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은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든다. 성인에게는 농장이 인간관계의 장이 된다. 함께 흙을 일구고, 함께 수확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친밀함이 자란다.

노년의 농부는 자신의 손으로 길러낸 작물을 보며 생애의 의미를 되새긴다. 절망이 아니라 수용으로 삶을 마주하는 태도, 그것이 에릭슨이 말한 자아통합의 완성이다. 한 사람의 생애가 씨앗에서 열매로 이어지는 순환이라면, 치유농업은 그 순환을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교육장이자 심리적 회복의 공간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관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간다. 디지털 연결은 많아졌지만, 마음의 연결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 결과 우울과 불안, 무기력, 사회적 고립이 늘고 있다. 에릭슨이 말한 심리사회적 위기는 현대인의 일상으로 옮겨왔다.

이런 시대에 치유농업은 빠르게 상처를 덮는 대신 ‘천천히 회복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흙을 만지고, 씨를 심고, 기다리는 일은 인내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병든 식물을 돌보는 일은 곧 나를 돌보는 일이며, 실패한 밭을 다시 가꾸는 일은 삶을 다시 일으키는 상징적 행위다.

에릭슨은 “인간은 자신보다 큰 질서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성숙한다”라고 했다. 농업은 바로 그 질서를 체험하게 한다. 햇빛과 비, 바람과 흙의 순환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는 자연의 리듬에 동참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재정립하게 된다. 흙을 만지며 인간은 다시 관계의 존재로 회복된다.

치유농업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경작하는 일이다. 농부가 흙을 갈고 씨를 뿌리듯, 인간은 자신 안의 신뢰와 자율성, 근면과 친밀함을 가꿔야 한다. 자연은 그 과정을 조용히 돕는다. 그리고 어느 날, 싹이 자라 꽃을 피우듯 인간의 마음도 다시 살아난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은 결국 인간의 내면을 향한 성장의 지도이며, 치유농업은 그 지도를 따라 걷는 실제의 길이다. 흙 위에서 자라나는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기다리며, 함께 웃는 사람들 속에서 인간의 마음 또한 자라난다. 치유농업은 그렇게 인간이 잃어버린 신뢰와 친밀함을 되찾는 삶의 두 번째 발아(發芽)를 가능하게 한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5. 인간의 본능과 치유농업, 에드워드 윌슨의 생물친화가설.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10.)

최연우. 2025.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10.2.)

최연우. 2025. 알버트 반두라의 자기효능감 이론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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