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을 따라 안쪽으로 접으세요

2025-12-14

이제 10대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엔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의 기원을 찾다 보면 태연히 그때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무엇도 탓하지 않고 오직 나의 서사 안에서 싹트는 새파란 고통을 보기 위해서. 그러나 어린 내 모습을 마주하고 연민을 경계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 한동안은 그 연민을 이겨내지 못해,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신파적인 장면을 수없이 바라봐야 했다.

어항에서 수족관으로

어쩌면 고통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신파가 끝나고 찾아온 냉혹한 자기혐오의 시간은 내게 더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 고통에 무뎌지면 기억의 해상도가 점점 낮아지다, 복잡했던 과거는 결국 하나의 뭉툭한 단상이 된다. 잦은 회상으로 심각하게 마모된 기억. 겉면엔 ‘탈출’이란 글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다.

내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더 크고 더 멋진 곳에 살아야 마땅했다. 고향은 대도시였지만 서울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늘 비정상적인 압력에 시달렸고, 나는 그 압력을 온몸으로 흡수한 뒤 다시 재생산하는 엔진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 학원가를 유령처럼 떠돌고,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무당처럼 칼춤을 췄다. 홀로 귀신이 되고, 무당이 되는 기괴한 일인극. 그 연기력에 하늘이 감복했을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그토록 염원하던 서울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후 내가 서울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나의 깨달음은, 나는 그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니었고, 서울 역시 그리 똑똑하고 유능한 공간이 아니었으며, ‘똑똑하고 유능한 것’ 자체가 해로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 직장 선배는 서울살이에 대한 나의 푸념에 꿈을 갖고 나간 ‘큰물’은 대부분 비슷한 배신감을 안긴다며 유학생 시절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내내 그 내용과 관계없이 비참한 기분에 빠졌다. 고향을 떠나고자 했던 그 욕망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서. 어떤 식으로든 그곳에 적응하려 했던 나의 모든 노력이 욕심에 불과했던 것 같아서.

이런 묵은 과거를 헤집게 된 이유는, 지난 10월 대구에서 사망한 베트남 여성 뚜안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느낀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구직 비자(D-10)를 소지한 25세 베트남 여성 뚜안은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취업 직종이 제한된 현실에서 생계를 위해 자신에게 허가되지 않은 업종의 공장에 취업했고,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합동단속을 피해 3시간 넘게 실외기실에 몸을 숨기다 추락해 끝내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경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감각

뚜안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에 방문한 날, 나는 내가 느끼는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난감한 회상이었다.

겨우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한 경험을, 국경을 넘은 이주자의 비통한 죽음에 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더 좋은 삶을 꿈꾸며 한국에 왔다’는 아버지의 호소 앞에서 나는 기어코 그의 죽음에 나를 투영하고 말았다. 내가 더 나은 곳을 꿈꿨듯이, 그도 더 나은 곳을 꿈꿨을 것이다. 공부를 하고, 노동을 하며, 더 나은 삶을 꾸리려 했을 것이다. 나는 뚜안의 궤적에 내 삶을 억지로 포개며 몰염치한 슬픔에 잠겼다.

유학생을 대거 유치한 뒤,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노동을 제한하는 구조는 치밀하게 은폐된 함정이다. 빚을 내 유학을 온 청년들에게 취업 제한은 곧 생존을 포기하라는 선고이며, 이들의 노동력 없이는 존립 불가능한 기업에 피해와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제도다. 생존하기 위해서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 거기에 갇힌 이들을 압박해 발생한 이 비극은 ‘더 나은 곳’을 믿고 떠나온 미련한 청춘을, 세상이 우릴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끝내 좌절시켰다.

나와 뚜안 사이엔 우리를 같게 만들기도 하고 다르게 만들기도 하는 점선으로 된 구분이 있다. 뚜렷하지 않은 그 점선은 나를 종종 헷갈리게 만들지만, 이곳에선 분명 내가 있는 곳이 경계의 안쪽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뒤늦게 무력감과 슬픔을 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이제 그 선을 따라 안쪽으로 접어야 한다. 포개진 뒤엔 안쪽과 바깥쪽이 구분되지 않는다. 설령 다시 펼쳐지더라도, 한번 접힌 자국은 방향을 기억한다. 그 틈에 나는 재빨리 나의 염치를 그 안에 접어 숨긴다. 그리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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