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신문·의회정책아카데미 공동 주최
제4회 시장경제 아카데미(시경EPA) 3강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발제
민주당 추진 상법 개정안 동향·쟁점 분석
"제3자 배정 신주 발행 등 방어수단 제동"
"경영권 방어에 적신호... 실효적 해법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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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주식회사 등기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법인)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당수 국내 기업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전문가 경고가 나왔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가 법제화되면, 외부로부터의 경영권 위협에 맞서 기업의 오너 혹은 최대주주가 자주 활용하는 자사주 처분(매입), 신주 발행 등의 방어 수단을 쓰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26일 열린 '제4회 시장경제 경제정치 아카데미(이하 시경EPA)' 3강에서 '상법 등 경제 관련 법제 개정 동향 및 쟁점'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경제 분석지 시장경제와 사단법인 의회정책아카데미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행사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천 변호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상법 전문가다. 서울대 법대 사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6년 3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28기. 1999년부터 대한법률구조공단 공익법무관, 법무법인 대륙을 거쳐 2002년부터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에는 미국 로스쿨 순위 1위 노스웨스턴 법대에서 법학석사를 받았다.
그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 줄기인 '이사의 일반 주주 보호' 원칙이 명문화되면, 국내기업들이 해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자본에 먹잇감으로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 세력의 적대적 기업 인수(M&A) 시도에 맞설 사실상 유일한 대응책인 제3자(백기사) 배정 신주 발행이나 회사의 자기주식(자사주) 처분이 지금처럼 수월하게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이나 기업의 자사주 매입 등은 이사회 결의를 전제로 하는데, 이런 결의 자체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위반 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해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기자본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의반을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도 있다. 자연스레 기존 오너 입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잃게 되는 셈이다.
미국 대부분의 주와 일본 회사법 등에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 인수 선택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 제도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천재민 변호사는 "신주를 발행하거나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행위에 대해 법원은 그동안 절차적 정당성을 중심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해왔다"며 "하지만 개정 상법 통과 이후에는 주주 전체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가동하기 전, 고려해야 할 요건이 그만큼 더 까다로워졌다는 의미다.
경영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개정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적대 세력에 경영권을 내주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재계 공통의 시각이다. 천재민 변호사는 "해외 자본이 노리는 국내 특정 회사가 분명히 있다"며 "지배주주 지분율이 적은 회사가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합병비율을 산정하거나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주식병합(감자) 등의 경영활동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먼저 합병비율 산정과 관련해서는 "두 회사가 어떤 비율로 합쳐지더라도 결국 존속회사의 자산은 동일하다고 보고, 문제 삼지 않았던 게 과거 판례이지만, 앞으로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근거로 한 소송을 당할 수 있다"며 "당장은 합병비율 산정 규정(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을 따르는 것이 리스크를 줄일 대안"이라고 했다.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자주 활용하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주주에게 부여하는 주식매수선택권만으로는 모회사 일반주주 손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며 "자회사 주식 일부를 현물배당하는 방식으로, 물적분할이 무효가 되는 것만은 막는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주식병합의 경우 "그 결과로 소수주주의 주식이 1주 미만의 단주가 될 경우, 회사는 해당 주식을 현금 청산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독립된 특별위원회를 통한 공정한 대가 지급이 이뤄져야 법적 리스크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 당론을 살펴보면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의무화 ▲상장사의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전체 이사 중 독립이사 비율을 기존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상향 조정 ▲대규모 상장사의 경우, 다른 이사와 분리해 별도 선출하는 감사위원 숫자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 ▲이사의 총 주주 이익 보호 및 전체 주주의 이익 공평 대우 의무화 ▲전자주주총회 근거 규정 마련 등을 담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이정문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전국 100만 곳이 넘는 상장·비상장 법인에 적용된다. 중소·중견기업들도 포함된다.
민주당은 여러 안건 중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와 상장사의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규정만 분리,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했다. 이 개정안은 같은 달 24일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관련 논란을 최소화해, 상법 개정의 물꼬를 틀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이달 27일 열릴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밖의 다른 안건은 정국 상황을 보면서 순차적으로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기본 전략이다.
재계는 일관되게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 이사진을 상대로 한 주주들의 줄소송과 투기자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국 경제는 미래를 내다본 주요기업 오너들의 한 박자 앞선 과감한 투자와 신사업 구상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은, 이사회가 눈앞의 근시안적 이익에만 매몰돼 중장기적 미래먹거리 발굴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영을 제대로 한다면 이사 충실 의무 확대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는데, 오히려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된 서구 각국은 기존 오너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법제화했다"며 "오너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꽁꽁 묶고, 투기자본에게만 활로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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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변호사는 이사 충실 의무 확대와 함께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상장사의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규정도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줄 사안으로 꼽았다. 정보기술(IT) 인프라 문제로 주주 의결권 행사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주총 결의 효력이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IT 인프라 문제에서)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주총 무효 사유가 될 수 없도록 하는 보완 장치 마련이 요구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전문 위탁업체에 IT 인프라 구축을 맡기는 것이 법적 책임을 피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천 변호사는 소수주주 보호 정책 중 하나로 관심이 높은 집중투표제에 대해 "이사 수가 많을수록 특정 이사 후보에 대한 소수주주들의 몰표가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사 수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상장사들이 늘 수 있다"고 점쳤다.
천 변호사는 "추상적인 규정이어도 검찰과 금융당국은 어떻게든 관련 근거를 찾아내 처벌을 과대하게 해왔다"며 "상법 개정안을 두고도 방심해선 안 될 뿐 아니라, 대응책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집중투표제란
현행 상법은 원칙적으로 1주당 1개의 의결권만을 행사하도록 한다. 이런 가운데, 회사가 4명의 이사 후보 가운데, 2명을 선출한다고 하면, 개별 후보자마다 각각 찬반 투표가 이뤄진다. 이때 만약 대주주의 우호지분이 51%를 넘을 경우, 후보자별 투표 모두에서 대주주 측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대주주가 원하는 이사 2명이 선임되는 구조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이사 후보 4명 중 한 사람에게 ‘몰표’를 주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식 10주를 갖은 소액주주가 후보자별로 최대 10개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보유한 의결권 전부를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외국인이나 소수주주 등이 지지하는 특정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개정 상법에 포함됐으나 회사마다 정관을 통해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민주당 주도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안에서는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에 한해 동 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