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일랜드’에서 ‘우정의 아일랜드’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20

디아스포라(diaspora)란 특정 민족이 스스로 또는 강제로 기존에 살던 땅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집단을 형성한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상당수가 더 나은 삶을 찾아,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한반도를 떠나 일본, 중국, 소련(현 러시아), 미국 등으로 흩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그들 중에는 1945년 광복 이후 조국으로 돌아온 이도 있었으나, 이런 저런 사유로 이주한 곳에 그냥 정착한 사람도 많았다. 한국이 윤석열정부 들어 2023년에야 외교부 산하에 재외동포청을 만들고 7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외동포 보호·지원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자의로 외국에 이민을 가는 선택이야 막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타의로 모국을 등지게 만드는 일만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원로 역사학자인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2002년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을 펴냈다. 영국사 전문가인 저자가 12세기부터 700년가량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아일랜드의 역사를 다뤘다. 일제강점기 35년을 겪은 한국인으로선 가늠하기 힘든 민족적 고통이었으리라. 아일랜드 역사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1845∼1849년 이 나라를 덮친 대기근이다. 아일랜드인의 주식인 감자가 고갈되면서 수백만명이 굶어죽었다. 지배자인 영국은 본체만체했다. 그 시절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조상을 비롯해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미국으로 떠났다. 우리가 ‘아일랜드’ 하면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쓰라린 디아스포라의 기억 때문이라고 하겠다.

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한 것은 1922년의 일이다. 영국 식민지 경험이 있는 대다수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도 영연방 회원국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1948년 국민투표 결과로 아일랜드는 영연방에서 탈퇴하고 영국의 군주제를 부정하며 공화국이 되었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아일랜드는 아직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한국과 외교 관계도 없었다. 다만 서울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일랜드인 가톨릭 신부와 수녀 8명이 전쟁 발발 초기 피난을 포기하고 신자들 곁에 남았다가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졌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경내에는 이들 8명의 헌신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한국을 찾는 아일랜드 국민, 특히 가톨릭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비록 아일랜드는 6·25 전쟁 공식 참전국은 아니지만 1000명 넘는 아일랜드계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영국군, 미군, 호주군 등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이 가운데 영국군 소속 130명, 미군 소속 29명, 호주군 소속 2명 등 160여명이 전사했다고 하니 참으로 고귀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20일 힐데가르트 노튼 아일랜드 아동청소년부 차관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과 만났다. 백 회장이 아일랜드 출신 6·25 참전용사들의 노고를 언급하자 노튼 차관은 “양국의 역사 공유를 통해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며 “한국·아일랜드 간 긴밀한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이제 ‘슬픈 나라’ 아일랜드의 이미지는 그만 털어내고 ‘우정의 나라’ 아일랜드로 거듭났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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