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스타트업열전] 노스볼트 파산과 전 CEO의 '너무 빠른' 재창업 논란

2025-05-25

[비즈한국] 2025년 3월 유럽의 대표적 배터리 스타트업 노스볼트(Northvolt)가 58억 달러(7조 9000억 원)의 부채를 남기고 무너졌다. 노스볼트는 초기부터 유럽이 중국 배터리 제조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유럽 배터리의 희망’과 같은 회사였다.

노스볼트의 파산 절차가 아직 진행되는 가운데, 노스볼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 CEO 피터 칼손(Peter Carlsson)이 파산 발표 3개월 만에 제조업 AI 스타트업 아리스 마키나(Aris Machina)를 창업해 다시 투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타 창업자에게는 실패조차도 자산이 되는 걸까? 유럽 벤처 생태계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재도전의 미학’과 ‘책임 회피의 특권’ 사이에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노스볼트의 파산: 유럽 배터리 전략의 붕괴

노스볼트는 스웨덴 스켈레프테오(Skellefteå)에 위치한 기가팩토리를 중심으로 유럽 배터리 독립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비용 초과, 품질 논란, 수요 예측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2025년 3월 스웨덴 현지 공장의 완전 폐쇄를 선언했다. 이후 마지막 고객 스카니아(Scania)마저 중국 CATL로 공급선을 전환하자 노스볼트는 사실상 단 한 명의 고객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현재 공장에 남아 있는 900여 명의 직원도 추가 해고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폴란드 그단스크 공장은 이미 스카니아에 매각되었으며, 다른 사업 부문도 매각이 논의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노스볼트가 독일 정부와 KfW(독일 국가개발은행)로부터 받은 6억 유로(9000억 원)의 보증 대출과 총 4.5억 유로(7000억 원) 규모의 독일 하이데(Heide) 공장 프로젝트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모기업이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인 지금, 공공 자금의 회수 가능성과 프로젝트의 지속성 모두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스볼트의 파산은 단순히 한 스타트업의 실패가 아니다. 이는 유럽 배터리 산업 전체가 중국 주도의 글로벌 가치사슬 속에서 얼마나 구조적으로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5월 8일 뮌헨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Interbattery Europe)의 배터리 데이(Battery Day)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글로벌 컨설팅 그룹 P3그룹의 이네스 밀러 박사(Dr. Ines Miller)는 유럽 배터리 산업의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했다.

중국은 이미 저가 원자재, 수직 통합, 대규모 생산능력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고히 다졌다. NMC(니켈 망간 코발트), LFP(리튬인산철) 셀 가격은 30~45% 하락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LFP 기술에 집중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에 따라 유럽 배터리 산업이 NMC 기반으로는 중국의 저가 전략에 밀리는 상황이다.

미국은 IRA(Inflation Reduction Act)를 통해 전 밸류체인에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지역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1000만 원)의 세액 공제를 제공하고, 배터리 핵심 소재의 현지 조달 요건을 강화해 미국 내 생산 및 가공을 촉진한다는 것이 IRA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지원 내용의 골자다. 이는 배터리 공급망의 지역화를 유도하며, 유럽과 아시아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를 이끌고 있다.

반면 유럽은 여전히 규제와 복잡성, 국가별 편차에 갇혀 있다. 명확하지 않은 산업 전략, 느린 실행, 고비용 구조, 이 모든 것이 노스볼트의 몰락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노스볼트의 파산은 유럽 기술기업의 미래에 관한 단서이자 경고다. 유럽이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한 시스템적 기반과 정책 실행력 부재가 결합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실패에 대한 교훈을 누가 새겨야 할까? 파산의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고 있을까? 미래 전략은 어떻게 바뀌고 수정되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이 노스볼트의 사례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노스볼트 창업자의 새 스타트업 창업, 너무 빠른 재기?

노스볼트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던 피터 칼손은 노스볼트 파산 직전 일부 지분을 현금화한 뒤 곧바로 AI 기반 제조 스타트업 아리스 마키나(Aris Machina)를 공동 창업했다. 이 스타트업은 제조 공정 최적화를 위한 AI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며, 초기 단계에서 이미 얼리버드(Earlybird), 빌리지 글로벌(Village Global), AENU, 플래닛 A(Planet A)등 유럽 주요 VC로부터 자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사업 아이템 자체가 노스볼트의 주요 실패 영역과 유사하다는 점, 조직 해체 책임에 대한 공식적 설명 없이 곧바로 재창업에 나섰다는 점 때문에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SNS에서는 공개적으로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의 기후 기술 전문가 나다 아흐메드(Nada Ahmed)는 링크드인에서 ‘58억 달러의 부채를 남긴 채 회사를 파산시킨 이 CEO는 불과 3개월 만에 새 스타트업으로 수백만 달러를 모았다. 마지막 고객 이탈, 품질 문제, 비용 폭증, 심지어 일부 지분 현금화까지. 그런데 왜 아무도 그를 멈추지 않나? 이게 벤처캐피털의 광기 정점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례는 공유 오피스 사업의 상징인 위워크(WeWork) 창업자 애덤 노이만(Adam Neumann)을 떠올리게 한다. 노이만은 위워크 파산 이후 ‘플로(Flow)’라는 주택 임대 플랫폼을 창업해 다시 투자금을 유치했다.

노이만은 위워크의 기업 가치가 약 470억 달러(64조 원)에서 80억 달러(10조 9000억 원)로 급락하는 동안 CEO로 재직하며 기업 자금을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사용하고 가족을 회사에 관여시키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 후에도 회사를 떠나면서 약 10억 달러(1조 3000억 원) 퇴직 패키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유명 VC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가 노이만의 새로운 스타트업에 3억 5000만 달러(4700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하자 업계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많은 투자자와 창업자들은 위워크에서의 부정적인 경영 기록에도 노이만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노이만의 새로운 스타트업 ‘플로’는 주택 임대 플랫폼으로 소개되었지만, 기존의 고급 아파트와 큰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위워크에서 거론했던 ‘공동체 조정 EBITDA(Community-adjusted EBITDA)’와 같은 모호한 개념을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공동체 조정 EBITDA’는 애덤 노이만과 당시 위워크 경영진과 함께 재무 건전성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기 위해 만든 비표준 회계 지표로, 투자업계와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숫자 기만’으로 비판받았다. 위워크는 실제로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내면서도 이 지표를 통해 “수익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이만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반면, 여성이나 유색인종 창업자들은 여전히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노이만의 사례는 벤처 투자 생태계의 구조적인 불균형과 편향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처럼 일부 유명 창업자에게는 ‘실패조차 투자 자산이 되는’ 일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릴 때다. 실패에 대한 분석과 책임이 생략되는 것은 감정적 불편함 이상을 준다. 스타트업과 벤처 생태계는 워낙 모험을 감수하는 곳이기에 실패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도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은 영웅으로 포장된다. 그 뒤에 가려진 크고 작은 문제들은 성공 앞에 가려져도 되는 ‘사소한’ 것으로 종종 치부된다. 그런 일이 건강한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

유럽도 실리콘밸리처럼 ‘실패를 통한 학습’을 장려해왔다. 하지만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실패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노스볼트 전 CEO의 스타트업 재창업 소식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미래를 우려하는 경고음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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