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가 한 번 서리를 맞으면 거두어 일반적인 조리법대로 물김치로 담가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꼭 닫고 땅에 묻는다. 공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김치항아리를 봉하라. 이듬해 봄에 열어보면 그 빛깔이 햇김치 같고 그 풍미 또한 깨끗하고 쩡하다( 經一霜卽收, 如常法作淡菹. 藏甕封盖埋地中, 令勿泄氣. 至明春發見卽其色如新, 味亦淸爽).”
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 속 배추로 ‘김치 담그는 방법(沈菹法)’이 이렇다. 배추물김치와 흡사하다. 이 책에는 무동치미인 나복동침저(蘿 凍沈菹), 총각김치에 가까운 침나복함저(沈蘿 鹹菹), 오이소박이의 기본기를 품은 황과담저(黃瓜淡菹)도 나온다. 맛을 북돋을 때는 어떤 부재료를 썼을까. 무동치미에는 생강·파의 흰 줄기·청각·초피 등을, 총각김치에는 고추·고춧줄기·고춧잎·청각·갓줄기·갓잎·초피·부추·마늘 등을 썼다. 오이소박이에는 고춧가루였다. 위에 보이는 ‘일반적인 조리법’의 면모를 짐작할 만하다. 겨울을 나며 김치 맛이 깊어진다는, 매콤하면서도 복합적인 풍미가 상승한다는 감각은 죽 이어졌다. 한 세대 뒤의 사람인 유득공(1748~1807)은 <경도잡지>에 화려한 서울식 섞박지인 잡저(雜 )를 기록했다.
“잡저는 새우젓국을 달여 맑은 젓국을 받아, 무·배추·마늘·고추·소라·전복·조기를 항아리에 버무려 담는다. 겨울을 지나며 맵싸해진다(雜 , 鰕鹽汁候淸, 蘿 · ·蒜·番椒·螺·鰒·石首魚. 用陶甕和淹, 經冬辛烈).”
덜 익은 김장김치를 살짝 헤친다. 젓갈과 마늘과 생강이 어울려 익은 덕분에 더욱 또렷해진 김치 내음이 먼저 코끝에 닥친다. 조심스레 한 줄기만 길게 찢어 입안에 쏙 집어넣는다. 침샘을 자극하는 신맛, 콧속을 파고드는 매콤함, 파와 마늘이며 생강에 젓갈이 어울려 내는 알싸한 풍미도 반갑다. 신맛도, 매콤함도, 알싸함도, 초겨울 무와 배추가 피워낸 단맛 덕분에 모난 데 없이 둥글고 우아하다.
김치는 새봄까지 더욱 그 맛이 깊어질 테다. 이 계절의 김치는 오랫동안 반양식이었다. 쌀밥이 있는 밥상에서 맛의 조화와 균형을 잡는 핵심 요소였다. 지구 곳곳의 온 민족이 채소를 오래 두고 먹자고 저마다 안간힘을 썼다. 그 가운데서도 김치는 혐기성 발효와 호기성 발효를 아울러 젖산이 뿜는 생동감과 확장성에서 한 경지를 이루었다.
김치든 물김치든 ‘김치’에는 국물이 있다. 질감을 잘 보존한 무와 배추뿐만 아니라 익어가며 자연스레 맛을 더하며 우러난 그 국물은 발효의 깊은 맛으로 김치를 감싼다. 김치와 그 국물은 한 번 더 몸을 바꾸어 또 다른 음식의 바탕 또는 주재료 또는 부재료가 된다. 김치찌개·김칫국·김치전골·김치찜·김치만두·김치전·묵은지지짐·김치볶음·김치죽·갱시기·김치밥·김치말이밥·김치볶음밥·깍두기볶음밥·김치김밥·김치국수·김치말이국수·동치미국수·김치라면·백김치초밥·김치우동·김치돈까스·김치파스타·김치버거 등등 주워섬기자니 숨이 넘어갈 판이다. 김치는 한마디로 ‘익어가는 맛의 서사’이다. 아예 무침으로 그치는 겉절이를 한 극단으로, 갓 익은 김치부터 묵은지까지, 시간의 흐름을 탄 풍미의 서사이다. 이 계절에 김치를 떠올린다. 기어코 그 관능에 탐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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