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문화의 세기, 시민문화권 보장을 위한 용어 바로 읽기 - (33) 공동체

2025-02-27

‘공동체(community)’는 오늘날 가장 많이 강조되는 정책 용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질주는 우리 사회를 무한경쟁 사회로 만들었다. 이러한 경쟁 사회는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이로부터 세계는 다시 공동체를 통해 경쟁 사회의 부작용을 교정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공동체 예술, 마을공동체, 생활문화공동체 등 공동체는 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이나 주민자치, 사회 복지, 사회적 경제 등 국가 정책 전 분야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공동체는 국가의 공적 책임으로 유지된다. 이것 때문에 공공 축소를 지향하는 시장은 공동체와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이 무한경쟁이 일반화되어 있는 시대에 어째서 시장경제와 상극인 공동체가 다시 강조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십조씩 들어가는 국가 정책 사업이 정권 교체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혀 혈세만 낭비하는 꼴을 계속 봐야 한다. 이것이 문화가 시민의 권리가 된 시대,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공동체의 양면성

공동체란 같은 믿음과 자원, 그리고 활동을 공유하는 집단이나 사회를 말한다. 공동체라고 하면 마치 ‘엄마’나 ‘가족’과 같이 우리에게 안전함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으로 공동체는 개인이 겪는 갖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체’라 하면 편안한 마음이 든다. 특히 소수민족이나 여성, 원주민 등 주류로부터 소외된 공동체는 구성원의 생명줄과도 같은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국제화되고, 개성화된 다양성의 시대에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탈-공동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히잡’이나 ‘여성 할례’ 등과 같은 이슬람 공동체의 규범이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안보’ 개념으로 확장된다. 이처럼 공동체에 관한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그러나 어떤 쪽이든지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은 공통적인 생각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공동체의 딜레마

1979년 영국 수상이 된 마거릿 대처는 “사회란 없다”라며 신자유주의 출범을 선언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소외된 공동체 관리를 위해 과도한 공적 비용을 지출한 나머지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국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란 없고, 개인은 오직 자기 노력과 능력을 무기 삼아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빈곤은 개인이 알아서 책임져야 할 무능이다. 그동안 공공과 복지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도둑질하는 게으른 이들의 보호막이었기에 공동체는 악덕이며 퇴출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국가는 공동체를 애타게 찾고 있다. 그 이유는 공동체가 그동안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공격에 직면하여 보존해야 할 저항의 장소이자 현대적 소외에 대한 해독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양성이 문화산업 발전의 원천자원이 된 시대에 공동체가 도시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사회적 자본 생산의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좌파도 우파 신자유주의도 모두 공동체를 현대 사회의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웃픈 일이 벌어진다.

신자유주의 통치술로서 공동체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와 공동체 간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고, 시민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신자유주의는 국가 외부에 있는 공동체를 거버넌스로 참여시켜 문제를 해결한다. 거버넌스는 지배구조의 권한 할당을 말한다. 하지만 국가는 거버넌스를 공동체 지배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때 윤리는 환각제가 되고 문화는 땔감이 된다. 공동체의 규범은 개인을 억압하기에 저항을 부른다. 그러나 공동체 규범이 개인에게 외부적 억압이 아니라 내부적 윤리가 되면, 개인은 자신을 공동체와 일치시키고 국가는 공동체를 통해 개인을 통합한다. 예컨대 ‘1인 기업가 정신’은 국가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대표적인 공동체 윤리다. 책임, 신뢰, 죄책감, 의무 등과 같은 윤리는 신자유주의적 시민 주체 형성, 즉 시민을 자원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음, 문화는 개인을 공동체로 소속시키는 강력한 접착제다. 따라서 문화는 정치적 주체화 방식이 발생하는 수단이자 윤리적 자기 열정 기술이 이루어지는 지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공동체는 ‘풀뿌리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시민 자원화 수단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따라서 시민문화권의 주요 방식인 공동체 활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책임’보다 ‘권한’이며, ‘교육된’ 자기 필요가 아닌 ‘진정한’ 자기 필요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지혜이다.

이강민 (사)울산민예총 정책위원장, 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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