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2025-02-26

소설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 이야기다. 나도 신학교에서 희랍어 그러니까 그리스어를 쬐끔 배웠지. 처음 배울 적엔 그리스어로 시를 쓰고 싶었으나 꿈만 창대했다. 지난해 순례단과 함께 그리스 정교회의 ‘교종’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를 이스탄불에서 뵙기도 했다. 영접실에 갔더니 초콜릿과 함께 그리스인들이 즐기는 식전주 ‘우조’를 내어주어 한 잔 쭉. 모르고 마신 성직자들 볼이 순식간에 빨개졌어. 술이야 항상 끊었다고 말하는데, 끊은 기념으로 한 잔은 즐겁다. 강제로 금주해야 할 ‘가막소’의 내란 장군들과 우두머리는 상당히 괴로울 테지만. 암튼 그날 정교회 미사는 평소보다 짧았는데도 3시간. 고대 그리스어 찬트가 시종 이어지고, 수십번 앉았다 섰다 운동도 되덩만.

그리스어로 ‘편지’란 ‘에피스톨레’라 한다. 바울과 요한의 편지가 에피스톨레다. 한 인격을 향해 정중한 편지를 써서 보내는 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 편지는 급기야 성서가 되었다.

한 작가에게 기자가 질문을 던졌대. “작가님은 어디서 영감을 얻고 또 어떻게 기록을 남기시나요?” 그러자 “매일 마음에서 우러나는 편지를 써요. 아이의 도시락에 쪽지를 남기고, 친구를 만날 땐 꽃다발에 엽서를 넣어 가요.” 종이에 무언가 써서 마음을 전하는 사람. 친필 글씨로 메모를 남기는 일은 국정원 직원들이나 하는 드문 일이 되었다. 희랍어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전하기 위해 무슨 글을 쓸까나. 통역기는 편리하지만, 외국말을 배우는 간절한 시간을 지워버린다. 말보다 앞서 가닿으려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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