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유일한 발암 원인 ‘흡연’…그 선택에도 유전학적 요소가 있다

2025-06-11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환경오염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감소

DNA 복제 때의 ‘우연한’ 돌연변이가 원인의 대부분이라는 이론도

질병은 자연 발생, 인간은 과학기술로 맞서…자연요법 기대는 위험

우리는 바깥 세상을 관찰하여 위험에서 벗어나 생존하고 매력적인 짝을 찾아 자식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도록 진화해왔다. 이 모든 활동을 몸 안에서 관할하는 유전자의 활동을 우리는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고 환경의 영향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암의 발생 원인에 대한 생각에도 그런 경향이 반영된다. 산업화가 초래한 환경오염은 미세먼지와 방사선, 환경호르몬 등을 발생시키고 암 발병과 사망률을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다. 이것이 보통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암학회에서 1930년부터 최근까지의 역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흡연의 유행에 따른 폐암의 증가를 제외하면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대체로 감소했다. 흔히 생각하듯이 환경오염이나 식품 첨가제 따위가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의 삼성서울병원도 참여한 2023년 ‘네이처’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미세먼지가 폐암을 유발하는 정도는 흡연의 영향에 비해 매우 미미했다. 흡연이 폐암의 위험성을 8.18배 증가시키는 데 반해 미세먼지에 의한 증가율은 1.08배에 불과했다. 나이의 영향력(1.10배)이나 남성에 비한 여성의 위험도(1.09배)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다.

또한 미세먼지는 돌연변이를 유발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면역체계의 잘못된 작용을 유발하여 자연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를 가진 세포들이 암으로 진행되는 데 영향을 주는 정도였다. 한국에서 미세먼지 농도 관측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였는데, 흔히 하는 착각과는 달리 그동안 미세먼지는 무려 5분의 1로 줄었다.

환경호르몬에 대해서도 정확한 증거를 확인해야 한다. 2020년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식품, 화장품, 위생용품, 공산품, 생활화학제품 등에 포함된 비스페놀, 파라벤, 프탈레이트 등 화학물질 14종을 대상으로 통합위해성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이 결과가 특별히 중요했던 것은, 기존에 생산제품들을 중심으로 수행했던 단편적인 평가 방식과 달리, 인간이 먹고 마시고 피부에 바르는 일상생활 속 행위를 통해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체내 총 노출량은 모든 연령대에서 안전기준 대비 불과 0.05~8.5% 수준으로, 심각한 위해 우려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DNA를 손상시켜 암을 유발하는 방사선은 어떨까. 인공방사선을 탓하기 전에 이미 방사선은 자연환경에 항상 존재한다. 지구에서는 다양한 방사성 원소들이 안정한 상태로 변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지구에 쏟아지고 있는 우주 방사선은 대기 중 질소 또는 산소와 반응해 삼중수소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중수소는 다른 자연 방사성물질들과 함께 빗물에 섞여 지표로 낙하하며, 직접 혹은 동식물의 호흡이나 먹이사슬을 거쳐 인체에 흡수된다.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사람이 1년간 노출되는 이러한 자연방사선의 양은 약 3m㏜(밀리시버트)다.

인공방사선은 자연방사선과 달리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의학 목적의 방사선을 제외한 인공방사선 연간 노출량을 1m㏜로 정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주변 방사선량의 목표치는 0.05m㏜이며 실제 방사선량은 0.01m㏜ 미만으로서 자연방사선의 양에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적은 양이다.

현재까지 인간의 문명에 의한 발암 원인으로 확실히 입증된 것은 흡연이 유일하다. 흡연은 어디까지나 각 개인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심지어 여기에도 유전학적인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된 130만명에 대한 유전체 연관분석 결과를 보면, 흡연자들은 니코틴 수용체나 보상 및 중독에 관련된 뇌신경 회로에 특정한 변이들이 있어서 흡연 중독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이처’에 보고된 무려 340만명에 대한 유사한 연구에서도 흡연에 취약하게 만드는 유전 변이들이 발굴되었다.

이런 유전자를 타고나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문제다. 물론 온갖 권고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것 자체는 본인의 의지 문제이므로 유전자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편 2015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 하나가 의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불운 이론(bad luck theory)’으로 알려진 이 연구는 한마디로 암이 생기는 이유가 다름 아니라 자연적인 이유로 운이 나빠서라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성체 줄기세포라는 것들이 있어서 이들이 계속 분열함으로써 장기를 이루는 체세포들을 만들어낸다. 연구진은 각 장기에서 암이 발생하는 정도와 해당 줄기세포가 분열하는 횟수가 정확히 비례한다는 것을 토대로, 결국 DNA 복제 시마다 생기는 돌연변이의 축적이 암 발생 원인의 대부분을 설명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대장과 소장을 비교해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장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장암의 발생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줄기세포의 분열 정도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험용 쥐에서는 대장보다 소장의 줄기세포 분열이 더 많이 일어나고 역시나 소장에서의 암 발생률이 더 높다. 이 연구진은 미국 외에 69개 나라의 데이터까지 추가하고 더욱 상세한 분석을 수행한 결과 이전 연구와 동일한 결론을 얻게 되고 이를 2년 후 또다시 ‘사이언스’에 발표하였다.

수치적으로 보면 전체 암 유발 돌연변이의 약 3분의 2가 체세포 DNA 복제 시의 오류로 설명되며, 나머지 3분의 1이 부모의 생식세포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 변이 및 후천적 환경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3분의 1 역시 자연적인 원인들이 대부분이다. 선천적 변이란 BRCA1/2 유전자 변이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이것 역시 DNA의 오류가 체세포가 아닌 부모의 생식세포에서 일어난 것이다. 후천적인 환경 요인도 대부분 자외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등 자연의 문제이다. 한 예로, 간암의 중요한 위험요인은 술이 아닌 간염 바이러스다.

혹시 특정한 암의 발생률이 특정 인구집단에서 증가하는 경우들에서는 지역 문화에서 원인 요소를 찾을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급증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유방암이다. 카이스트의 우리 연구실에서 국립암센터와 함께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젊은 환자들의 유방암에는 생식기관에 많이 존재하며 여성호르몬에 반응하는 특정 섬유아세포의 활성이 강하게 나타났다.

지난 글 ‘암 유전자의 두 얼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유방암 세포들은 여성호르몬을 먹고 자란다. 인위적인 환경호르몬이 아니라 여성들 몸속에서 나오는 ‘자연’ 호르몬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생활습관이 바뀜에 따라 초경이 빨라지고, 초경이 빨라짐에 따라 일찍부터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것이 젊은 유방암이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의 원인에 대하여 경제 성장과 발전을 탓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과학의 발전과 영양상태 개선으로 인해 얻게 된 의학적 이득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 비만,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 성인병이 급증한 이유를 두고 농업혁명과 기술 발전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여전히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겪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대사성 질환들의 궁극적 원인은, 굶어 죽는 것이 너무나도 흔했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것을 최대한 많이 먹고 지방으로 축적시켜 저장하는 생존 프로그램이 불가피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칼로리 흡수가 제한되면 몸은 자동적으로 그렐린과 같은 식욕촉진 호르몬을 분비하여 우리의 뇌로 하여금 음식을 섭취하도록 자극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비극들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할 뿐 아니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암과 노화, 대사질환, 전염병 등의 원인에 대하여 더욱더 인간의 직관에 쉽게 다가오는 것은 산업의 발달로 인한 환경오염, 흡연이나 운동부족 혹은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접촉 같은 인간의 잘못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생태계 파괴 행위가 크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는 병원균과의 싸움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인간은 오랜 과거부터 수많은 바이러스 및 세균과 싸워왔고 그 전쟁에서 많은 생명을 잃어왔다.

인간이 가진 유전자 중 가장 다양한 변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MHC다. 각종 병원균의 항원을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 신고하여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이 유전자의 인간 집단 내 변이는 무려 2000개가 넘는다.

MHC 변이의 종류에 따라 보다 잘 대응할 수 있는 병원균의 종류가 다르다. 때마다 다른 종류의 병원균이 창궐하는 환경에서 특정 MHC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 남아 인류가 멸종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MHC 유전자의 다양성은 인간과 수많은 병원균 간의 진화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해준다.

잘 알려진 대표적인 바이러스만 추려 보더라도 호흡기를 감염시키는 감기, 인플루엔자, 폐렴 바이러스, 위장관 감염을 일으키는 노로 바이러스 및 로타 바이러스, 간을 파괴시키는 간염 바이러스들, 신경계를 공격하는 광견병 바이러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뇌수막염 및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이 있고, 그 외에도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 풍진 바이러스, 거대세포 바이러스, 콕사키 바이러스 및 에코 바이러스 등이 있다. 과거에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흑사병, 콜레라, 결핵 등은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에 의한 것인데, 항생제의 개발로 세균에 대한 전쟁에서는 많은 진전을 이루었지만 바이러스는 우리의 세포 안으로 침투해버리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이 더욱 어렵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암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암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의 진짜 문제는 자연에 있으며, 인간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거기에 맞서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 치유와 같은 잘못된 기대에 현혹된다. 물론 암과의 싸움은 쉽지 않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치료가 많은 고통과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치료를 받지 않고 여생을 조용히 받아들이려는 개인의 결정은 존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요법으로 암을 치유할 수 있다는 헛된 기대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한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기술의 상징과 같던 스티브 잡스(사진)도 바로 그런 무모한 고집으로 5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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