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영제국은 전세계에 여러가지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리 전’으로 말이죠.”
이처럼 자국 음식을 대놓고 ‘디스(무례한 태도로 사람이나 사건 따위를 깎아내리는 것)’한 이는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히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정치적 업적 외에도 탁월한 문장력과 센스, 꾸밈없는 소탈함 등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특히 그의 식습관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완전히 대조된다. 히틀러는 극도로 절제된 식습관을 유지했다. 담배를 멀리하고 술도 즐기지 않았으며, 채소 위주의 소박한 식사를 했다. 반면 처칠은 애연가였고, 위스키와 브랜디를 달고 지냈다.
그래서 처칠에겐 술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 금주법 시대에 미국을 방문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입원 중에도 의사에게 위스키를 처방받는 편법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는 알코올을 의료용으로 취급하는 일이 허용됐기 때문. 처칠은 그의 이름을 딴 칵테일과 샴페인까지 있을 정도로 이름난 애주가였다.
귀족 가문 출신인 처칠은 다양한 고급 요리도 즐겼다고 한다. 블루치즈의 일종인 스틸턴 치즈, 송아지고기 크림 스튜, 바닷가재, 푸아그라를 곁들인 사슴고기, 생굴을 좋아했다고 하며 가족과 함께 런던의 고급 호텔인 ‘사보이 호텔’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런 식습관만 보면 처칠을 그저 절제할 줄 모르고 사치를 즐기는 한량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음식에 대한 깊은 조예를 외교에도 적극 활용했다.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회담에 처칠과 미국의 해리 트루먼,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등이 모여 전후 국경 조정에 대해 논의했다. 처칠은 이날 만찬 메뉴를 직접 골랐는데 이중에는 영국의 국민 음식으로 불리는 ‘피시 앤 칩스’가 있었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이 음식은 원래 대구나 명태 같은 흰살생선으로 만든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어부들은 독일의 잠수함 공격 때문에 대구·명태가 잡히는 먼 바다까지 조업을 나갈 수 없었다. 그 대안으로 영국인들은 국토 남단, 프랑스와 가장 가까운 바다인 도버해협에서 많이 잡히는 서대를 선택했다.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서대는 전시의 식량난을 해결해주었고, ‘피시 앤 칩스’에도 자연스럽게 쓰이게 됐다. 서대에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다. 주 서식처인 도버해협 연안에는 바로 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프랑스의 노르망디가 위치해 있기 때문. 처칠은 연합군의 승리에 있어 영국의 역할이 적지 않았고, 여기에는 일반 국민의 희생과 인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음식을 통해 강조하려 했다. 음식으로 메시지를 전한다는 처칠의 전략은 맞아떨어졌고, 회담 결과 영국은 거액의 전쟁 보상금을 챙길 수 있었다.
이때 요리에 사용된 생선은 ‘도버 솔(Dover sole)’로 서대의 한 종류다. 담백하고 섬세한 풍미를 지녔으며, 버터에 굽거나 튀겨 먹는다. 서양식 생선구이인 ‘뫼니에르’에도 자주 쓰이는 어종이다. 한때 흔하디 흔한 생선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과도한 포획으로 값이 비싸졌다고 한다.
이 물고기는 무려 고대 로마에서도 미식가들이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서대를 좋아해 다양한 조리법이 발달했다. 화가 피카소도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서대 ‘먹방’을 선보인 바 있다.
우리나라에선 여수 앞바다를 비롯해 남해안 전역에서 서대를 볼 수 있다. 싱싱한 것은 회무침으로 먹으며 어시장 같은 곳에서는 꾸덕하게 말린 것을 판다. 약불에 서서히 굽다보면 구수한 풍미가 올라오며, 젤라틴이 풍부해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간장양념에 재었다가 굽거나 번철에 지져 전처럼 먹어도 좋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